금융불안 선제대처..금융개혁법안 힘실려

주말인 20일 이명박 대통령 주재로 열린 금융상황점검회의에서는 미국발 금융 불안에 따른 대책을 점검하는데 초점이 맞춰졌지만 영국계 은행 HSBC의 외환은행 인수 포기 등 현안에 대한 평가도 나왔다.

이 대통령이 이날 최근 금융시장 불안에 대해 기민하고 적극적인 대응과 철저한 대비책을 주문한 것은 미국발 쇼크의 파장이 길어지면서 자칫 우리 경제에 불안감이 확산될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 HSBC 계약 파기 '정책결정 실기' 논란

이 대통령이 외환은행 매각협상이 결렬된 것에 대해 "정부가 신속한 결정을 하지 못해 실기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한 것은 일단 공직자들에게 국익에 입각한 책임감 있는 결정을 강조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협상 결렬의 핵심 원인이 인수가격에 있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는 상황에서 `실기론'은 자칫 정부의 책임을 둘러싼 논란을 몰고 올 가능성을 낳고 있다.

'실기'라는 지적은 인수계약 승인권을 쥐고 있는 금융위원회가 갈팡질팡하는 사이 국제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이 커지고 급기야 계약 파기로까지 이어진 사정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전광우 금융위원장은 올해 4월23일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각에 대해 "법적인 불확실성이 해소돼야 하는 부담이 있지만 최대한 빠른 시일 안에 원만한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고 말했다가 6월 들어서는 "법적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은 상황이고 아무리 국익과 금융산업의 발전을 위한다 하더라도 국민적 정서를 감안해 충분히 공감을 얻겠다"며 한 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 집회로 정부의 리더십이 크게 훼손되자 반대 여론이 높은 외환은행 매각 문제에 선뜻 결론을 내리지 못한 것이다.

금융위는 HSBC와 론스타의 2차 매매계약 시한 만료 일주일 전인 7월25일 매각심사 착수계획을 발표했고 지난 달 12일에 가서야 HSBC로부터 인수승인 신청서를 제출 받아 심사에 착수했다.

정부의 인수 승인이 늦어지는 사이에 영국의 고든 브라운 총리가 이 대통령에게 승인요청 서한을 보냈고 론스타는 금융위에 매각승인 지연 때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을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복잡한 상황 속에 나온 이 대통령의 지적은 정부 안팎에서 책임론 공방을 낳을 수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현재 국내은행을 중심으로 인수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외환은행 매각이 속도를 낼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 위기에 처한 금융개혁 법안 구하기

이 대통령은 미국발 금융위기로 회의론이 일고 있는 금산분리 완화 등 금융규제 개혁법안에 대해 "신속히 처리되도록 당정간 협조하라"며 힘을 실어줬다.

금융위는 이번 정기국회에 은행법과 금융지주회사법, 산업은행법, 자통법 등 18개의 법률 개정안과 불법추심방지법, 한국개발펀드(KDF)법 등 3개의 법률 제정안을 정기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금산분리 완화와 금융 공기업 민영화 등 쟁점 법안이 많은 상황에서 미국발 금융위기가 엄습해 투자은행 육성 및 규제완화 법안에 대해서도 반대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금융시장이 불안한 상황에서 지나친 규제완화는 금융회사의 건전성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과 함께 미국의 투자은행이 차례로 몰락하는 상황에서 투자은행 육성 정책이 의미가 있느냐는 회의론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이 대통령이 신속한 처리를 당부함에 따라 금융규제 완화법안의 국회 통과는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나 야당과 시민단체의 반발이 예상되는 상황이다.

특히 금산분리 완화 법안에 대해서는 여당 내에서도 부정적인 시각이 있어 국회 심의 과정에서 진통이 예상된다.

◇ "중소기업 흑자도산 막아라"

이 대통령은 또 미국발 금융위기로 "중소기업들이 일시적 자금난으로 흑자도산하는 사례가 있을 수 있다"며 철저한 대비책을 지시했다.

중소기업 흑자도산이 없도록 금융당국과 기관들이 개별기업의 상황을 일일이 점검하고 현장을 챙기라는 게 이 대통령의 지시내용이다.

이는 최근 은행들이 경기둔화 및 해외차입의 어려움으로 중소기업들에 대한 대출을 줄이거나 상환 연장 등을 해주지 않는 상황을 우려한 대목이다.

이에 따라 중소기업, 특히 건설사와 영세 기업들을 중심으로 자금난이 심화하고 있다.

특히 환율 변동 위험을 피하기 위해 통화옵션상품 `키코'(KIKO)에 가입한 중소기업들의 손실이 최근 원.달러 환율 급등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이 대통령의 주문으로 은행들은 가급적 대출 회수를 자제할 것으로 보이며 정부도 중소기업의 피해를 막기 위한 구체적인 대책 마련에 착수할 전망이다.

전날 이성태 한은 총재도 은행장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금융협의회에서 은행들이 리스크 관리 노력을 강화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대출자산을 급속히 회수해 실물경제에 충격을 주는 일이 없도록 각별히 노력해줄 것을 당부한 바 있다.

정부는 이와 함께 급변하는 금융시장의 상황을 감안해 수시로 회동해 신속한 대응책을 마련할 예정이다.

(서울연합뉴스) 조재영 김호준 기자 princ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