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오전 11시 서울 용답동 장안평 중고차 시장.입구에 들어서자 10여명의 호객꾼들이 따라붙었다. "국산이나 수입 경ㆍ소형차를 보러 왔다"는 기자의 말에 임형복씨는 "5000㎞도 안 뛴 '새 차'가 많으니 맘껏 골라 보라"며 말을 건넸다. 시트 비닐도 채 벗기지 않은 '뉴 SM3',임시 번호판을 단 '아반떼',주행 거리가 100㎞밖에 안 되는 '젠트라X' 등 갓 출고된 신차라 해도 손색이 없을 만한 차들이 즐비했다. 임씨는 "신차와 다름없는 중고차가 부쩍 늘었다"며 "신차보다 가격은 100만~200만원 이상 낮아 전시 후 3일이면 동이 날 정도로 인기가 높다"고 귀띔했다.

◆신차 넘쳐나는 중고차 시장

이날 오후 2시 서울 가양동 서서울자동차매매시장에서도 임시 번호판을 단 새 차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매매상 윤종인씨는 "주행 거리가 300㎞인 임판차(임시번호판 차) i30가 있다"며 "가격은 신차 값보다 100만원 저렴한 1500만원"이라고 말했다. 수입차도 예외가 아니다. 그는 주행 거리 2600㎞인 크라이슬러의 'PT크루저'를 보여주며 "신차보다 600만원 싼 2300만원"이라고 강조했다.

번호판을 뗀 리스차도 종종 눈에 띄었다. 주행 거리는 주로 1만㎞ 미만이었다. 에쿠스,체어맨 등 대형 세단을 비롯 폭스바겐 골프,메르세데스벤츠 C클래스,렉서스 LS460 등이 수두룩했다.

서울 율현동 중고차시장 매매상 김응천씨는 "리스 기간이 끝나기 전에 중고차 시장으로 나온 차"라며 "인도금을 전 차주에게 주고 리스 잔액을 한꺼번에 내면 구입할 수 있고,리스회사와 프로그램을 다시 짜면 리스 승계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불황 여파…차깡밀어내기 성행

중고차 시장에 때아닌 '새 차 바람'이 불고 있는 건 불황 탓이 크다. 율현동 중고차시장 김모씨는 "임판차는 자동차 영업소들이 판매 할당량을 소화하려고 중고차 시장으로 밀어내기한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경기가 좋지 않을수록 신차가 안 팔려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보통 밀어내기 물량은 연말 재고 처리 기간에 대량으로 생기는데 최근엔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때를 가리지 않고 나온다"고 덧붙였다.

번호판이 없는 '리스 중고차'는 기업에서 영업용이나 의전용으로 빌렸다가 만기까지의 비용 부담을 감당하지 못해 내놓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주오토서비스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달까지 대우캐피탈에서 리스 계약기간(36개월 기준)을 채우기 전 반납돼 중고차 시장으로 넘어간 차량은 총 332대로 고급 국산 및 수입차가 50% 이상을 차지했다. SK엔카 관계자는 "최근 경영 여건 악화로 리스 해지 건수가 늘자 기업체 리스 물량이 중고차 시장으로 밀려들고 있다"고 분석했다.

자금줄이 막힌 기업이나 개인이 현금 확보를 위해 '차깡'을 이용하는 사례도 빈번하다. 카드 할부로 신차를 구입한 뒤 중고차로 팔아 목돈을 마련하는 방식이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소비자 입장에선 각종 서류와 소유 관계를 철저히 확인한 뒤 잘만 고르면 신차에 가까운 차를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어 이득이 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김미희 기자 iciici@hankyung.com

/최민지 인턴(한국외대 3년)ㆍ채상원 인턴(한국외대 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