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화의 법칙을 자유분방한 현대적 미감으로 바꿔보고 싶었어요. 애당초 특정한 틀과 꼴을 고집하지 않았기에 어린이의 유희처럼 자유롭더군요. 전통이라는 이름의 쇠락한 '성전'을 지키는 늙은 파수꾼이 아니라 예술이라는 무한히 넓은 공간을 거닐기 원하는 젊은 나그네라고나 할까요. "

남도 산수의 예맥을 잇고 있는 전정 박항환 화백(61)의 새로운 한국화 조형예술론이다. 서울 인사동 우림화랑에서 개인전(23일까지)을 열고 있는 그는 "한국화를 현대적인 화풍으로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화면에 '색깔 밖의 색깔''선비의 정신'을 자유롭게 표현하려 했다"고 말했다.

필묵은 아크릴,화선지는 캔버스로 대체됐다. 자유분방한 운필은 두텁고 거칠며 둔탁한 선으로,그윽하고 은근하던 먹색들은 현란한 원색들로 자리를 바꿨다. 17세 때부터 남농의 집을 드나들며 몸에 익힌 한국의 미의식을 그대로 간직해 소나무,학,매화 등 그림 소재나 구도는 동양화 같지만 서양 물감으로 그린 알록달록한 그림들이 색다른 느낌을 준다.

"문인화를 어떻게 현대적으로 계승해야 할 것인가를 줄곧 고민해 왔어요. 동양화에 근ㆍ현대회화 기법인 음영법을 과감히 사용해 봤지요. 현대인의 감성에 맞게 남도의 산수 소재에 물감을 흘려 새로운 작업도 시도하고 있구요. "

서울 홍은동 자택에서 작업할 때에는 새벽 6시에 일어나 하루 10시간씩 몰입한다. 그는 "스승 남농 허건과 도춘 신영복의 작품에서 우러난 문인화의 격조를 추구하려고 노력한다"며 "굳이 비교한다면 내 작품은 아직 50점 수준도 안된다"고 겸손해했다.

(02)733-3788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