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정책적 동기로 투자 결정이 왜곡되는 것을 막기 위해 국민연금의 기금 운용을 완전히 민간에 위탁키로 했던 결정이 무산될 위기에 놓였다. 여야 모두가 국회에 상정된 국민연금법 정부 개정안과는 달리 정부의 참여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정리했기 때문이다.

자산운용 업계 등에서는 "거대 국민연금 운용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 정부가 운용에 계속 개입하면 자율성.전문성의 결여로 수익률 제고는 요원해질 것"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15일 국회 보건복지가족위와 국민연금 등에 따르면 기금운용위원회를 7인의 민간 금융.투자 전문가로 채우기로 한 국민연금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수정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대신 기금운용위원 수를 늘리거나 민간 전문가 7명에서 몇 명을 빼내고 정부위원(기획재정부 복지부 등)과 가입자대표(사용자.근로자.지역가입자)를 참여시키는 방안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 신설될 자산운용 전문 기관인 기금운용공사 내에 설치되는 기금운용위원회는 기금 운용에 대한 주요 정책을 수립하고 운용을 감독하는 최고 의사결정 기구다.

국회 보건복지가족위 소속 정미경 의원(한나라당)은 "민간 전문가들로만 위원회를 채우면 기금에 큰 손실이 났을 때 누가 책임을 질 수 있겠느냐"며 "다른 의원들은 물론 복지부 역시 정부 측 인사가 참여해야 한다는 데 공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야당 역시 비슷한 입장으로 민주당의 최영희 의원은 "민간 전문가에게 맡긴다는 원칙에는 찬성하지만 그것은 운용에 국한돼야 한다"며 "기금의 책임성 강화와 관리는 정부가 해야 한다"고 말했다.

민노당의 곽정숙 의원 역시 "가입자대표가 위원을 추천만 하는데 그치는 이번 개정안은 '가입자의 연금 주권'을 훼손하는 것"이라며 운용에도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복지부 관계자는 "최근 국민연금의 투자 확대와 손실이 큰 이슈가 되면서 기금의 안정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큰 것 같다"며 "국무회의를 통과한 법안이 국회에서 일부 수정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며 이를 수용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자산운용 업계 등에서는 기금운용위원회가 민간 전문가들로만 채워지지 않는다면 이번 국민연금법 개정은 완전히 무의미한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현재의 국민연금공단 산하 기금운용본부 체계와 실질적으로 아무 것도 달라지는 게 없다는 것.모 자산운용사 대표는 "비전문가와 함께 투자를 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는 자금운용을 해본 사람이면 누구나 안다"며 "결국 정부와 정치권은 여전히 국민연금의 수익률 제고보다 영향력 유지에 더 관심이 있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국민연금 기금은 현재 총 적립액이 230조원가량으로 전세계 국부연금펀드 중 3위 규모이며 2043년에는 2465조원으로까지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서욱진 기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