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권자 표심 흔드는 페일린의 말 … 말 … 말

"미국의 높고 단단한 유리천장을 완전히 깨부술 것이다"(공화당 부통령 후보 지명 직후)

"자서전을 두 권이나 쓴 사람이 변변한 법안 하나 만든 게 없다"(오바마의 업적을 비난하며)

"작은 마을의 시장이라도 진짜 책임감이 따른다"(오바마의 정계입문 전 경력을 자신과 비교하며)

"나는 여러분과 같은 하키맘이다"(평범한 미국의 엄마임을 강조하며)

"나는 언론의 호평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미국민들에게 봉사하기 위해 워싱턴에 갈 것이다"(부통령 후보지명 수락연설)


"새라 페일린은 우리 옆집 아줌마다(Shs is one of us)."

지난 9일 미국 공화당의 존 매케인 대통령 후보와 새라 페일린 부통령 후보가 오하이오주에서 가진 유세전에 참석한 신시내티 출신의 중년 여성 케이티 스톤은 페일린을 한마디로 이렇게 평가했다. 또 인터넷 블로거인 토머스 리프슨은 "페일린은 드레스 입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며,미모까지 겸비한 젊은 마거릿 대처 총리"라고 극찬을 늘어놨다. 미 인형가게에는 페일린의 트레이드 마크인 무테 안경과 검은색 정장 차림의 '새라 페일린 인형'도 등장해 27.95달러에 판매되고 있다.

미 대선 레이스가 '새라 페일린 신드롬' '새라 페일린 마법'에 걸린 듯하다. ABC방송의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 가운데 50%가 페일린에게 호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비호감은 37%였다. 남성과 여성으로부터 각각 54%와 47%의 호감을 샀다.

10대 딸의 임신 공개로 언론의 도마에 오르는 등 적잖은 시비가 일었으나 부통령 후보로서 적임인지를 묻는 질문에도 응답자들의 60%가 그렇다고 밝혔다. 공화당과 민주당 소속이 아닌 무당파 유권자들은 66%가 적임이라고 답했다. 주지사로서 보여준 적극적 업무 스타일,낙태 반대와 가정 중시 철학 등이 무당파와 우왕좌왕하던 공화당 일부 당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는 분석이다.

이렇다보니 "매케인도 페일린의 종이 얼굴가면을 쓰고 유세하는 게 낫다"는 우스개도 나온다. 두 사람이 함께 유세를 하면 TV 화면의 초점은 페일린에게 쏠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매케인이 연설할 때 청중은 차분하게 경청하는 편이나 페일린이 연설하는 시간에는 "새라,새라"를 연호하는 함성에 연설이 종종 중단되기도 한다. 누가 대선후보이고 누가 부통령 후보인지 헷갈릴 정도다. 민주당 버락 오바마 대선후보의 상대가 매케인인지,페일린인지도 분간이 안 된다.

물론 11월4일 대선일까지는 아직 50여일이 남았다. 돌발변수는 많다. 이날 워싱턴포스트는 페일린이 주지사로 근무하면서 자녀들과 남편의 여행비와 숙박비로 총 4만3490달러의 세금을 낭비했다고 보도하는 등 치부를 들춰냈다. 외교ㆍ군사 경험이 전혀 없는 그가 다음 달 2일 그쪽 분야의 베테랑인 조지프 바이든 민주당 부통령 후보와 TV 토론에서 맞붙어 얼마나 선방하느냐도 변수다.

페일린은 "이라크 전쟁은 신이 부여한 과업"이라고 주장하는가 하면 알래스카를 관통하는 300억달러 규모의 천연가스 파이프 건설공사를 '신의 뜻'이라고 지칭해 논란을 자청했다.

오바마 진영의 페일린 때리기는 갈수록 거세지는 양상이다. 오바마는 버지니아주 유세에서 매케인이 들고 나온 변화를 "돼지 입술에 립스틱을 바르는 것"이라며 "립스틱을 바를 수는 있지만 돼지는 여전히 돼지일 뿐"이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페일린이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나는 여러분과 같은 하키맘(Hockey Mom)이다. 하키맘과 투견(Pitbull)의 차이는 립스틱"이라고 미국의 열성적인 보통 엄마와 다를 바 없다고 강조했던 대목을 정면으로 겨냥했다. 하키맘은 하키를 하는 아이를 둔 부모처럼 아이를 뒷바라지하는 데 열성인 엄마를 뜻하며,투견은 물고 늘어지는 싸움개라는 말이다.

워싱턴=김홍열 특파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