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핵 불능화를 중단하고 영변 핵 시설의 복구를 구체화하면서 북핵협상이 다시 위기를 맞고 있다. 특히 북한은 최근 핵 시설 사찰 및 직접 검증에 대한 거부 의사를 분명히 하고 6자 회담 합의 내용을 뒤집는 등 핵 검증-핵 폐기 순으로 이어지는 차기 6자 회담 전망마저 불투명해지고 있다.

북한은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영변 핵시설에 붙여놓았던 봉인을 제거한 뒤 파이프와 밸브 등을 삽입하고 있다고 미국 폭스뉴스가 미 고위관리들의 말을 인용해 6일(한국시간) 보도했다.

지난달 26일 불능화 중단 선언에 이어 지난 3일 불능화로 제거됐던 전선 등 장비들을 창고에서 꺼내 핵시설 주변으로 옮겨왔던 북한이 IAEA의 봉인을 뜯어내고 일부 장비들을 재결합시키는 등 핵시설 복구를 보다 노골화했다는 의미다. 이에 대해 정부 고위 당국자는 "북한이 봉인을 제거하는 등 추가 조치에 들어갔다는 정보는 아직 접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북한의 이런 움직임은 미국이 자신들에 대한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를 검증체계 구축 이후로 미루고 있는 데 대한 불만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의 입장을 대변하는 조총련기관지인 조선신보가 6일 '북한은 핵신고서에 대한 검증을 위해 미국이 국제적 기준을 내세워 요구하고 있는 사찰을 받을 의무도 없고 이에 응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북한이 이렇듯 6자 회담 합의에 반하는 움직임을 보이자 미국은 북한 달래기에 나섰다. 북핵 6자회담 미국 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는 7일 베이징에서 기자들과 만나 "미국은 북한이 검증 방법에 동의한다면 테러지원국을 곧 해제할 수 있다"고 밝혔다.

힐 차관보는 "우리의 초점은 검증 프로토콜 문제를 마무리하는 것"이라면서 "그때가 되면 우리는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북한을 즉시 삭제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검증 계획서만 마련되면 북한을 테러지원국에서 빼고 검증은 차기 정부로 넘길 수 있다는 다소 후퇴된 입장이다.

하지만 북한이 잇따라 핵 시설 현장 사찰 및 검증 계획안 작성을 거부하고 있어 당분간은 대결 국면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외교 소식통은 "북한이 이미 불능화 중단 선언을 했기 때문에 당분간 입장을 되돌리기도 쉽지 않을 것"이라며 "부시 행정부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점도 북한 돌출 행동의 원인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

임원기 기자 wonk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