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되레 4700억 순매도
환매대비 현금확보 주력…주식비중 80%선 이하도

기관투자가의 대표격인 자산운용사들이 증시가 불안한 상황에서 전혀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코스피지수가 단기간에 1400선까지 맥없이 밀리는 상황에서도 저가 매수는커녕 오히려 주식을 팔기에 급급한 모습이다. 운용사들이 투자자들에게는 "지금이 주식을 살 때"라고 권하면서 정작 환매에 대비해야 한다며 주식 비중을 줄이는 상반된 모습을 보여 말과 행동이 다르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5일 증권선물거래소에 따르면 자산운용사로 구성된 투신권은 이달 들어 4일까지 유가증권시장에서 되레 4700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이 기간 연기금이 7500억원 이상,증권과 보험이 각각 3300억원가량 순매수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나마 5일에는 1000억원가량 순매수해 체면치레를 했다.

코스피지수가 1600선 아래로 떨어진 지난 7월25일 이후 행보를 보면 투신권의 '몸사리기'는 두드러진다. 증권사는 7월25일부터 이달 4일까지 1조4200억원가량 순매수하며 활발히 저가 매수에 나섰고 은행(8224억원) 연기금(7814억원) 등도 매수세에 가담했다. 반면 투신은 129억원 순매수에 그쳤다. 그나마 대부분 프로그램 매수에 따른 것이다. 이 때문에 일부 대형 운용사의 주식편입 비율은 80% 아래로 급감했다.

펀드평가사 제로인에 따르면 4일 기준으로 하나UBS(79.61%) KTB(79.79%) 우리CS(78.35%) 등은 주식형펀드 내 주식 비율이 80%를 밑돌고 있다. 현금성자산 비율이 20%를 넘어섰다는 뜻이다. 미래에셋(87.85%) 한국(83.71%) 삼성(89.33%) 등 주요 운용사들도 주식 비중이 90%에 못 미쳤다.

이채원 한국밸류운용 부사장은 "연기금이나 보험 등 고유계정으로 투자하는 일부 기관들만 저가 매수에 나서고 있고 대부분의 운용사들은 현금이 더 안전하다고 판단하고 주식 매수 시기를 늦추고 있다"고 전했다.

대형 운용사의 주식운용본부장은 "고객이 맡긴 자금을 대신 운용하는 입장에선 현재처럼 불확실한 장세에서는 막상 매수 주문을 내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환매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어 펀드매니저들이 위축돼 있다"고 난감해 했다. 실제 ETF(상장지수펀드)를 제외하면 국내 주식형펀드에서 지난 2∼3일 776억원 순유출됐다.

조재훈 대우증권 투자분석부장은 "펀드 환매 가능성에 미리 대비하고 일부 급락 종목을 손절매하는 과정에서 투신권이 매도 우위를 보였다"며 "증시의 향방과 주도주에 대한 확신이 없는 상태여서 투신권은 당분간 시장 움직임에 후행하는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해영 기자 bon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