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둔화에 무역적자 벌써 116억弗 넘어
자본수지 환란이후 최악…세계경기까지 침체
유가 급등세 꺾이며 물가는 다소 안정세


한국 경제가 시장에 떠도는 위기설을 버티지 못할 정도로 취약한 것인가.

고유가에 이어 원·달러 환율 상승으로 물가 불안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경상수지 적자와 경기 악화,순채무국 전환 가능성 등 악재들이 잇따라 쏟아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우리 경제가 성장 물가 경상수지 등 기초체력이 약화되고 있는 만큼 정부가 서둘러 시장 불안을 잠재우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경상적자 100억달러 육박

지식경제부는 8월 무역수지 적자가 39억3000만달러를 기록했다고 1일 발표했다. 이에 따라 올해 들어 8월까지 무역 적자는 116억6000만달러로 늘어났다.

경상수지 적자는 7월까지 77억9000만달러에 달했다. 8월 무역적자가 40억달러에 근접한 수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1~8월 경상적자는 100억달러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가 연초 예상했던 연간 경상적자 규모에 이미 도달한 셈이다.

해외로 빠져나가는 돈의 규모도 커지고 있다. 7월 자본수지 적자는 57억70000달러로 외환위기 이후 최대치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오가와 다카히라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이사는 "외국인들이 증시에서 매도세를 보이는 것 자체는 한국의 신용등급에 영향을 주지 않지만 국내 자본의 해외 유출 규모가 커지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여기에다 지난 6월 말 기준 순채권액이 27억달러에 그쳐 순채무국으로 조만간 전락할 수 있다는 위기감도 한 몫을 했다.

다행히 최근의 유가 하락으로 물가 상승세가 한풀 꺾였으나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통계청이 이날 발표한 8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전년 동월 대비)은 5.6%로 전달(5.9%)보다 소폭 둔화됐으나 한국은행이 관리하는 목표치(2.5~3.5%)를 훨씬 벗어난 상태다.

박현수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서브프라임 사태로 인한 세계적인 유동성 부족 현상,세계 경기 침체 등 악재에다 국내 경제마저 좋지 않아 시장에서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다"며 "예상보다 더 빨리 국내 경제가 나빠질 것이라는 불안심리가 팽배해 있다"고 말했다.

◆투자·소비심리 불안 우려

금융시장이 계속 불안하게 움직일 경우 우리 경제의 펀더멘털이 상당한 손상을 입을 수 있다. 국제 금융시장의 혼란으로 세계 경제가 불안한 가운데 국내 경제 주체들의 심리마저 극도로 불안해질 경우 투자심리와 소비심리가 붕괴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거시경제연구실장은 "국내에서도 외국인이 보유한 채권의 9월 만기 도래가 문제로 거론되지만 전세계적으로도 패니매,프레디맥 등의 채권 만기가 평상시보다 9월에 많이 몰려 있다"며 "국내외 금융시장의 불안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동성을 확보하는 차원의 자금 수요가 국제 금융시장에서 발생할 경우 외국 자본이 더 빠져나가 환율이 오르고,주식·채권시장이 계속 불안한 모습을 보일 수 있다. 취약해진 체력에 세계 경제가 걸린 독감이 겹치고,각종 설(說)에 휘둘리다보면 병이 커질 수 있다는 얘기다.

◆당국,불안심리 잠재워야

전문가들은 지금의 금융시장 불안이 펀더멘털의 문제라기보다는 심리적 요인이 큰 만큼 정부와 금융 당국이 불안심리를 안정시키는 데 총력을 다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현욱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9월 위기설을 진화하려는 정부와 중앙은행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시장에서는 외화유동성 지표들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며 "외환보유액,대외채권채무 상황 등에 대한 우려를 해소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해 우려를 불식시킬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박현수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국내 유동성 자체가 부족한 상황은 아니다"며 "연기금 펀드 등을 통해 시장 불안 심리에 충분히 대응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밝혔다.

정재형 기자 j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