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를 잇는 우애경영.' 대륙제관 주변 사람들은 회사가 탄탄하게 뿌리를 내릴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 한결같이 이렇게 답한다.
박창호 총회장이 회사를 세운 뒤 박중흠,박덕흠 두 동생이 경영에 참여했고,이후 총회장의 두 아들인 박봉국 부회장,박봉준 사장이 회사를 물려받기까지 50년간 경영 및 소유권과 관련한 단 한차례의 잡음도 없었기 때문이다.
박봉국 부회장은 "의견 충돌이 왜 없었겠느냐"면서도 "단지 최종 의사결정이 내려지면 모두가 따른다는 원칙이 잘 지켜졌고,또 원래 다들 잘 웃는 성격이다 보니 싸울 일이 없었던 것 같다"고 웃었다. 밀양박씨 종친회 관계자는 "창업자 형제들이 하도 붙어다녀 '박씨 자매'라는 별명을 붙여주기도 했는데 그게 대물림을 한 모양"이라고 말할 정도다.
형제간 우애가 더욱 각별해진 된 데는 기막힌 사연도 있다. 한국전쟁 때 삼형제는 각각 유엔군,국군,인민군으로 참전해야 했다. 영어에 능했던 맏형은 먼저 월남한 뒤 유엔군 통역요원이 됐고,함흥사범 출신인 둘째는 공수특전단의 전신 격인 '켈로부대' 요원으로 북파 임무를 수행했다. 박창호 총회장은 "함흥에 남아 있던 막내가 인민군으로 징병됐으니 하마터면 전쟁터에서 형제간에 서로 총부리를 겨누는 비극이 연출될 뻔했다"며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있던 막내를 면회갔던 게 아직도 눈에 선하다"고 말했다. 회사가 법인으로 전환된 1966년 일찌감치 회사 지분을 나누고 '장자 승계' 원칙에 따라 2세들까지 지분 승계 비율이 정해질 수 있었던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2세들의 역할 분담도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회사경영 총괄과 해외 마케팅 등을 맡고 있는 박봉국 부회장은 외대 중국어과를 나와 미국에서 MBA를 마친 뒤 1992년에 귀국해 상무로 경영에 참여했다. 그는 대륙제관 부탄가스 현지 판매법인인 '글로메스타' 설립을 시작으로 11년간 미국에 체류하며 회사 외연 확장에 힘썼다. 박봉준 사장은 한양공대를 나와 미국에서 MBA와 공학석사를 마친 뒤 1990년 기획실 차장으로 입사,경영 수업 13년 만인 2003년 연구생산 및 관리를 맡는 사장이 됐다. 전공인 기계공학을 살려 부친이 1986년도에 업계 처음 설립한 연구소를 확대 개편,현재까지 업계 최다인 200여개의 특허 및 실용신안을 확보하는 데 기여했다는 게 회사 안팎의 평가다.
특히 현재 국내에서 쓰이는 금속캔 용기 입구에 적용된 특허 중 99%가량을 개발,경쟁 회사로부터 로열티를 받을 정도로 기술 혁신에 많은 힘을 쏟았다. 액체가 용기를 타고 흘러내리지 않도록 뚜껑을 열면 올라오는 깔때기 모양의 스파우트(Spout),이 스파우트를 더 길게 뽑아낼 수 있도록 2단 접이가 가능한 'W 스파우트'가 대표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