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의 거물인 로버트 루빈 전 미국 재무장관(70)이 씨티그룹 집행위원회 의장직에서 물러난다.

씨티그룹은 25일 이사회 조직의 효율화를 꾀하기 위해 7명으로 구성된 집행위원회를 없애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회사 측은 루빈 전 장관이 의장직은 잃게 됐지만 이사회 멤버로 남아 선임 고문 역할을 한다고 덧붙였다. 집행위원회의 기능은 리처드 파슨스 타임워너 회장이 의장을 맡고 있는 후보추천 및 지배구조위원회로 넘어간다. 이에 대해 월가에선 예전처럼 최고경영자(CEO) 선임 과정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게 된 만큼 루빈이 조만간 은퇴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회사 측은 이번 결정이 비크람 팬디트 CEO의 주도로 이사회 조직 효율화 차원에서 이뤄진 것이라고 설명하지만 속을 들여다 보면 씨티그룹의 부진한 실적과 무관하지 않다. 씨티는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에 따른 부실자산 상각으로 지난 3분기 동안 총 170억4000만달러의 손실을 기록했다. 주가는 최근 1년 새 60% 폭락했다. 그동안 투자자들은 루빈 전 장관이 CEO 인선에 깊숙이 개입한 만큼 경영 부실에 대한 책임도 함께 져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루빈 전 장관이 1999년 이사회 의장에 취임한 이후 급여 보너스 및 주식 관련 보상을 통해 총 1억1800만달러의 천문학적 보수를 챙긴 것에 대해서도 불만의 소리가 높다. 최근 경영 실적에 비춰 지나치게 높은 대가를 지불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루빈 전 장관은 이날 파이낸셜타임스(FT)와 가진 인터뷰에서 "집행위원회의 역할은 정기 이사회가 열리지 않을 때 행정상의 업무를 수행하는 데 그쳤다"며 "씨티 내에서의 역할에는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자산 부실화에 대한 비판에 대해서도 "외부에서 온 사람이 자산 매매 업무 등에 관여하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책임론을 반박했다. 골드만삭스 출신으로 차익거래 분야에서 두각을 보인 루빈은 1993년 클린턴 정부 당시 재무장관에 올랐으며,1999년 10월 씨티그룹에 영입돼 그동안 집행위원회 의장직을 맡아왔다.

뉴욕=이익원 특파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