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년의 `핑퐁 여왕' 현정화(39) 코치는 17일 베이징대 체육관에서 2008 베이징올림픽 탁구 여자단체 3위 결정전 일본과 경기에서 3-0 승리와 함께 한국의 동메달이 확정되자 벤치에 있던 당예서를 끌어 안고 눈물을 글썽였다.

좀처럼 울음을 보이지 않던 그가 눈물을 흘린 건 힘들었던 지난 몇 개월의 장면들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갔기 때문이다.

1993년 예테보리 세계선수권대회 여자단식 정상에 올랐던 `탁구여왕'이자 남북 단일팀으로 참가했던 1991년 지바 세계선수권대회 우승 주역인 그는 여자탁구 최고의 스타였다.

양영자와 호흡을 맞춘 복식에선 1987년 뉴델리 대회와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수확해 최고의 `황금 콤비'로 이름을 날렸다.

그는 지도자로 변신해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여자팀 코치로 복식(이은실-석은미) 금메달에 앞장섰고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도 당시 사령탑이던 이에리사 태릉선수촌장과 함께 복식 은메달(이은실-석은미), 단식 동메달(김경아)을 합작했다.

`스타 플레이어는 지도자로 성공하기 어렵다'는 스포츠계 통념을 깨고 승승장구하던 그는 지난해 험한 경험을 했다.

2005년부터 대표팀 지휘봉을 잡아 선수들과 동고동락했지만 천영석 전 대한탁구협회장의 독선적인 협회 운영과 꿈나무 육성 지원 부족에 불만을 품고 유남규 전 남자팀 감독과 동반 사퇴한 것. 천 회장 퇴진을 위해 탁구인들과 촛불을 켜기도 했다.

그는 천 전 회장이 물러나고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탁구협회 수장을 맡으면서 러브콜을 받았고 지난 달 대표팀 코치진에 복귀했다.

감독이 아닌 코치 신분이었다.

한 달여가 그에게 주어진 시간. 어른들의 파벌 싸움 탓에 훈련에 집중하지 못했던 김경아, 당예서(이상 대한항공), 박미영(삼성생명)은 현 코치의 지도를 잘 따랐고 함께 구슬땀을 쏟았다.

그러나 완벽한 올림픽 준비에는 너무나 짧은 시간이었다.

한국은 이번 대회 준결승에서 2% 뒷심 부족 탓에 싱가포르에 2-3으로 졌지만 패자전을 거쳐 일본을 3-0으로 완파하고 금메달 못지 않은 값진 동메달을 수확했다.

현정화 코치는 "시간이 너무 부족했던 게 아쉽다.

선수들과 한 달이라도 더 훈련할 수 있었다면 싱가포르를 꺾을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에 잠도 제대로 못 잤다"면서 "싱가포르에 진 날 내가 다시 들어온 게 잘 한 것인가 하는 회의까지 들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이어 "(김)경아가 30세를 넘은 나이임에도 먼저 훈련하는 등 솔선수범했고 (박)미영이와 (당)예서도 너무 열심히 훈련했다.

잘 따라준 선수들이 너무 고맙다"고 공을 돌린 뒤 "동메달에 만족하고 단식을 잘 준비해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베이징=연합뉴스) chil8811@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