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홋카이도 도야코에서 주요 8개국(G8) 정상회의가 열린 지난달 8일.각국 정상 부인들은 회담장에서 다소 떨어진 한 리조트를 방문했다. 일본 건설업체 세키스이하우스가 설치한 견본주택을 구경하기 위해서였다. 생활에 필요한 에너지를 전량 자체 조달하고,온실가스를 전혀 배출하지 않는 '탄소 제로 주택(zero emission house)',이른바 '그린 홈(green home)'이다.

일본이 정상 부인들의 일정에 이 전시장 관람을 끼워 넣은 것은 환경 및 에너지에 대한 일본의 관심과 발전된 관련 기술을 과시하기 위한 것.따라서 일부 외국 언론들은 해당 기술이 상용화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리는 컨셉트 수준일 것이라는 시각으로 당시 행사를 지켜보기도 했다. 과연 컨셉트 수준의 기술이었을까.

17일 오후 일본 가나가와현 가와사키시 미노조구치.이곳에 몰려 있는 10여곳의 주택전시장 가운데 단연 방문객들로 붐빈 곳은 G8 정상회의에서 탄소 제로 주택을 선보인 세키스이하우스의 견본주택이었다. 당시 외국 정상의 부인들에게 보여준 기술을 고스란히 실제 주택에 적용한 모델이기 때문이다.

4인 가족용(건축면적 196㎡) 단층주택은 풍력발전기와 태양전지판으로 모든 에너지를 자체 조달한다. 일본 주택 평균 사용전력의 5배 수준인 15㎾의 전력을 생산한다. 이 주택은 지붕의 태양전지판 옆에 이끼를 재배해 주택 내부의 온도를 1도 낮추는 기능까지 갖췄다. 강력한 바람과 오존만으로 세탁물을 빨래하는 물 없는 세탁기,열 감지기로 사람이 있는 곳으로만 시원한 바람을 보내는 지능센서 에어컨 등도 설치돼 있었다. 모리시타 다마키 안내원은 "그린 홈은 개념상의 주택이 아닌 실제 현재 기술로 설치까지 가능하다"고 자신했다. 한국의 아파트 모델하우스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분위기다.

제로 에너지,제로 탄소 시대를 열어 나갈 '녹색 성장(Green Growth)'이 세계 경제의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전 세계 에너지 소비의 25%를 차지하는 주택 부문에서 그린 홈의 성장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모건스탠리는 재생에너지 시장 규모가 2030년에는 1조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적어도 1조달러의 4분의 1이 그린 홈 시장 몫이라는 얘기다. 관련 기술의 응용이 무한해 시장 규모는 어디까지 커질지 예측하기도 어렵다.

이에 따라 그린 홈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경쟁은 국가 차원의 주도권 다툼이 되고 있다. 아랍에미리트는 2016년까지 220억달러를 투입,화석연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180만평 규모의 탄소 제로 도시 '마스다르시티'를 만들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밝혔다.

중국은 충밍섬에 에너지 자급자족을 목표로 한 '동탄 프로젝트'를,덴마크는 도시 전체에 수소에너지를 활용하기 위한 'H2PIA' 프로젝트를 각각 추진 중이다. 영국과 캐나다도 대규모 친환경 주택단지 건설 작업을 진행 중이다.

하지만 한국은 아직 녹색 성장 시대를 주도하기에는 기술 수준이 걸음마 단계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저탄소 녹색 성장'을 새로운 60년의 비전으로 제시하겠다"며 그린홈 그린카를 한국 경제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제시했지만 가야 할 길은 멀다.

도쿄=차병석 특파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