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침체와 고물가가 동시에 진행되는 상황에서는 주가를 평가하는 잣대도 달라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높은 경제성장률이 뒷받침되는 주가 상승기에는 기업실적이 좋기 때문에 주가를 주당순이익으로 나눈 PER(주가수익비율)가 미래의 기업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으로 적정하지만 경기침체기에는 기업 실적의 변동성이 커지기 때문에 실적이 아닌 자산을 기준으로 한 PBR(주가순자산비율)가 더 적합하다는 지적이다.

PBR는 주가를 주당 자산가격으로 나눠 산출되는 지표다. 이 수치가 1배에 못 미치면 기업이 보유한 자산을 모두 정리하는 기업청산 후 1주당 나눠주는 현금이 현재 주가보다 높다는 뜻이어서 주가가 저평가된 기업으로 분석된다.

11일 대우증권에 따르면 이 증권사가 정기적으로 분석하는 202개 종목의 평균 PER는 10.8배로,이 중 104개 종목의 PER는 평균치에 못 미치고 있다. PER를 기준으로 보면 절반 이상의 종목이 저평가돼 있는 셈이다.

그렇지만 이는 일종의 '착시현상'이라는 지적이다. 경기 침체로 인해 주요 기업들의 예상 실적이 하향 조정됨에 따라 증시 전체의 PER가 높아져 그 결과 실적이 좋아서가 아니라 예상 실적이 상대적으로 적게 낮춰진 종목들까지 '저평가주'로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다.

코스피지수가 이날과 비슷했지만 기업실적 하향 조정이 없었던 지난 3월에는 주식시장 평균 PER가 지금보다 낮은 9.8배 수준이어서 당시 평균치를 밑돌았던 '저평가주'는 80여개에 그쳤다는 사실이 이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곽중보 하나대투증권 연구원은 "경기침체로 기업 실적 전망치의 신뢰도가 낮아지면서 실적을 기준으로 하는 PER로 주가의 저평가 여부를 판단하기는 힘들게 됐다"고 지적했다. 곽 연구원은 "반면 PBR는 자산가치를 산정할 때 보유한 부동산의 경우 실거래가의 60~70% 수준인 공시지가로 계산하기 때문에 자산 가격이 하락 추세에 있을 때도 어느 정도 안전판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경기침체기에는 PER보다 PBR가 기업가치를 제대로 평가하는 지표가 된다는 얘기다.

다만 대우증권 조재훈 투자전략부장은 "PBR가 자산가치만을 계산해 산출되는 만큼 실적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측면도 있다"며 "이를 보완하기 위해 영업이익 등의 지표로 평가 기준을 보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와 관련,대우증권은 올해 매출과 영업이익이 작년보다 크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현재 PBR가 1배에 미치지 못하는 종목으로 금호석유 화천기공 광주신세계 케이씨텍 등을 꼽았다.

김재후 기자 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