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로원에서 새벽미사를 드리던 중 할머니 한 분이 방귀를 소리나게 뀌었다. 옆에 있던 할머니가 "아니,미사 드리는데 그렇게 방귀를 뀌면 돼?"라며 몰아세웠다. 강론을 하던 신부는 웃음을 참느라 이를 악물고 눈을 감아버렸다. 신부가 계속 침묵하자 할머니들은 젊은 신부가 화가 난 줄 알고 숨을 죽였다. 그때 신부가 짧은 한마디로 강론을 끝냈다. "지금 이 순간 우리 공동체에 필요한 것은 훌륭한 강론이 아니라 서로를 용서하는 마음입니다. "

한국외방전교회 소속 최강 신부(사진)의 에세이집 ≪밴댕이 신부의 새벽 고백≫(가톨릭출판사)에 나오는 이야기다. 최 신부는 이 책에서 일상의 작은 일들에도 값진 의미와 지혜가 있음을 보여준다. 그는 어린 시절 친구들과 산에서 달리기 경쟁을 하던 형이 뒤처진 동생을 두고 갈 수 없어 경쟁을 포기한 채 함께 손을 잡고 언덕을 넘어왔던 일을 떠올리며 '형제적 공동생활'의 참뜻을 되새긴다. 최 신부는 "형제적 공동생활이란 손을 잡고 언덕을 함께 넘는 것"이라고 단순 명쾌하게 정리한다.

또 로마 유학 중 이탈리아어를 조금밖에 못 알아듣는 파키스탄 출신 이발사가 '너무 짧지 않게'라는 말을 '짧게'로 잘못 이해해 자신을 빡빡머리로 만들어버린 일에서 '이해하지 못한 것'과 '잘못 이해한 것'의 차이를 지적한다. 그러면서 "나는 올해만 벌써 몇 번이나 하느님의 뜻을 거슬러 하느님의 머리를 빡빡 밀어버렸는지 모른다"고 반성한다.

대학 졸업 후 상선을 타고 세계를 누볐던 최 신부는 스물아홉에 늦깎이로 출가해 2003년 사제로 서품됐다. 로마라테란대학에서 교회법을 전공했지만 율법주의자와는 거리가 멀다.

그는 "동료 교우들을 부당하게 폄하하고 상처를 주는 '열심한 신자'보다는 덜 공격적인 모습의 '날라리 신자'들이 더 자연스럽고 평화롭게 느낀다"며 '산을 옮길 수 있는 큰 믿음이 있다 하여도,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라는 성경 말씀을 들려준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