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서울 지하철 2호선 성내역 인근 아파트에 사는 주부 이현정씨(35)는 일주일에 두번 정도 밤 10시쯤 핸드 캐리어를 끌고 걸어서 5분 거리인 홈플러스 잠실점을 찾는다. 이 시간대에 가면 매장에서 채소나 과일 생선 육류 등 각종 먹거리를 '떨이 상품'으로 20~30% 싸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이씨는 "떨이라고 해도 신선도나 품질에선 별 차이가 없다"며 "물가가 올라도 먹는 것을 줄일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한푼이라도 아끼려고 장보는 시간을 야간으로 바꿨다"고 말했다.

#2.강동구 암사동에 사는 주부 서일숙씨(55)는 주말이면 차를 몰고 대형마트에 가서 물건을 '왕창' 사왔지만 유가가 껑충 뛴 지난 5월부터는 동네 슈퍼마켓으로 일주일에 서너번 걸어서 장보러 간다. 또 강동구청에서 공짜로 배운 인터넷 실력을 발휘해 화장지 생수 등 부피가 큰 생필품은 온라인몰에서 배달을 시키기도 한다. 서씨는 "동네 슈퍼의 상품들도 많이 좋아져 가격ㆍ품질에서 대형마트와 큰 차이가 없다"며 "기름값을 아낄 뿐 아니라 대형마트에 갈 때마다 카트를 가득 채우던 충동구매도 줄어든 것 같다"고 말했다.

'물가폭탄' 시대에 주부들이 허리띠를 졸라매는 알뜰 소비자들로 변신하고 있다. 대형마트에선 가격이 저렴한 '떨이 상품'이나 PB(자체 상표)상품 판매가 크게 늘고 있다. 또 생필품 할인쿠폰 회수율이 높아지고 신용카드사와 제휴해 특정 품목을 추가로 할인해 주는 행사도 인기다. 기름값을 아끼려고 동네 슈퍼를 이용하는 주부들이나 인터넷 쇼핑몰의 '반짝 세일' 품목을 클릭하는 알뜰족들도 이젠 낯설지 않다. 생활물가 급등으로 지갑이 얇아진 소비자들이 한푼이라도 더 싼 것을 찾는 노력들이다.

◆마감세일ㆍPB상품 인기

대형마트나 백화점 식품 매장에서 폐장을 앞두고 신선도가 떨이지기 쉬운 야채나 수산물 육류 등을 싸게 파는 '떨이 행사'는 알뜰 소비자들의 관심사다. 대형마트에는 무더위가 겹치면서 '야간 떨이족'들이 더 많아졌다. 롯데마트의 경우 지난달 수산물 떨이 상품 매출이 6월에 비해 13.7% 증가했고 야간에 이용하는 심야 쇼핑객도 10% 이상 늘어났다.

자취를 하는 '싱글족'이라면 대형마트에서 대용량으로 사다 놓고 다 먹지 못해 버릴 바에는 백화점에서 한 개나 반 개씩 잘라 소포장으로 파는 품목들을 50% 이상 할인하는 마감세일을 통해 구입하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다. 빵이나 마른 반찬을 한가지 가격에 팔거나 각기 다른 종류의 야채를 세 가지 이상 묶어 팔기도 한다. 특히 어류는 시간이 지날수록 파격적으로 가격이 내려가기 때문에 깨끗하게 손질된 고등어 갈치 등을 구입하기 좋다.

대형마트 등 대형 유통업체들의 PB상품도 소비자들이 많이 찾고 있다. 기존 제조업체 브랜드(NB) 상품보다 가격은 20% 이상 저렴하지만 품질은 크게 차이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마트의 경우 PB 매출 비중이 올 1월 12%에서 지난달 20%,홈플러스는 20%에서 22%.롯데마트는 14%에서 18%로 각각 높아졌다. 이마트 '행복한 아침 토스트',롯데마트 '와이즐렉 우유' 등 각 품목별로 NB상품을 제치고 판매 1위에 오른 PB상품도 크게 늘었다.

◆소량 구매ㆍ배달 주문 증가

고유가ㆍ고물가로 집 근처에서 장을 보거나 필요한 물건만 소량 구매하는 소비 경향이 두드러지면서 슈퍼마켓의 매출이 호조를 보이고 있다. GS수퍼마켓의 경우 지난달 매출(기존점 기준)이 지난해 같은달에 비해 9.6% 증가했고 이용객수도 7.6% 늘었다. 구매 금액에 상관없이 무료로 배달해 주는 서비스와 대형마트에 비해 적은 금액으로도 각종 사은ㆍ경품행사에 참여할 수 있는 것도 소비자들이 슈퍼마켓을 찾게 하는 요인이다. 대형마트에서 사은품을 받으려면 보통 7만~10만원 이상을 구매해야 하지만 슈퍼마켓에서는 3만~5만원 이상이면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인터넷 쇼핑몰 매출도 생필품 위주로 크게 늘었다. G마켓에서는 지난달 쌀이 30억원어치 가량 팔려 올초보다 50% 가량 늘었고 라면은 하루 1만5000박스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감자 고구마 역시 판매량이 올초 대비 100% 정도 급증했다. 옥션에서도 라면ㆍ쌀ㆍ화장지 등 생필품의 지난달 매출이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80% 가량 증가했다.

이런 현상들은 모두 '아끼고 또 아끼는' 소비자들과 '싸게 더 싸게'를 외치는 유통업체들이 만들어낸 고물가시대의 풍속도인 셈이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