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경제지표가 IMF 시절로 되돌려지고 있다고 아우성이다. 여기저기서 터지는 서민들의 신음소리가 안타깝기만 하다.

기러기 아빠를 유행시킬 정도로 세계최고의 교육열을 자랑하는 우리나라. 허리띠를 졸라맨 가정에서 최후에 단행하는 건 자녀가 다니는 학원 수 줄이기다.

“내가 못 먹고 못 입는 것은 괜찮은데 애들 학원비 못내는 것은 참을 수가 없습니다.”

사랑스런 자녀의 학원비를 내주지 못하는 애타는 부모 심정은 생활고 그 이상이다. 가장들은 부모가 능력이 없어서 자녀의 미래를 망치는 게 아닌가하는 자괴감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나 절망은 단지 생각의 그림자일 뿐이다.

내가 다니던 중고등 학교에 작은 장학금을 후원해주게 되었다. 나는 장학금을 기탁하면서 학교 측에 수령 자격을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성적이 좋으면 절대 안 됩니다. 그 반에서 제일 말썽을 잘 피우는 사람에게 주십시오. 싸움 잘하고, 이리 저리 선생님 속이길 좋아하고, 놀기 좋아하는 말썽쟁이들을 골라서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내 말을 들은 교감선생님은 눈만 끔뻑였다. 보통 중․고등학교에서 장학금을 받는 학생은 우등생이다. 조회시간에 호명되어 교장선생님으로부터 증서를 수여받고 학생들이 박수를 쳐준다. 그런 모범생들에게 주어야 교육 효과가 있지, 도대체 그런 천하의 말썽꾼들에게 돈을 왜 낭비해야하느냐는 표정들이었다.

나는 내 학창시절을 생각했다. 그때 모범생들과 말썽꾸러기들은 지금 사회에서 무엇을 하는가.

사회에서 관찰해보니 공부 잘하는 아이는 앞으로도 얼마든지 기회가 있고, 앞날이 보장된다. 그러나 국가고시 등에 매달리다가 합격하면 그만 그 것으로 안주하고 만다. 하지만 공부이외 다른 것에 정신이 팔렸던 친구들은 정신 차리고 마음을 잡으면 자신의 능력을 사회에서 최대로 발휘한다.

무엇인가를 성취해보겠다는 도전의식이 사회에 나와 활활 불타올라 크게 성공하는 경우가 많다. ‘기업’을 뜻하는 영어 '엔터프라이즈(enterprise)'는 본래 모험을 뜻하지 않던가. 기업은 바로 이런 모험과 도전정신이 있는 자를 필요로 한다. 이런 말썽꾼들 1명이 수천, 수만 명을 먹여 살린다. 오히려 공부 잘했던 수재는 자기 혼자만 배불리 하는데 그치고 만다. 몇 백 명 중에 한명이라도 나중에 사회에서 성공하면 보람있는 ‘말썽장학금’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가 혼동하는 게 있다. 타고난 재능과 시험 성적과는 별개라는 사실을 자주 잊는다.

과거 한 인간의 두뇌 능력을 측정하는 데 IQ(지능지수)라는 것이 유일했다. 그러나 천재적인 문화예술인들이 반드시 IQ가 높지 않은 것 보고 EQ(감성지수)가 측정되었다. 사회생활이 단지 두뇌 회전력으로 결정되지 않는 다고해서 MQ(도적지수)가 생겼다. 이런 지수의 치명적 결점은 창조성, 모험성의 결여다. 이미 만들어놓은 지식체계를 복제하는 능력이기에 배우지 않은 새로운 현실에 대처하고 미래를 창조하는 능력엔 무용지물이었다.

정작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인 기업, 과학자, 예술가, 전략가, 종교인 등의 분야가 제외되었다. 미개척분야의 창조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능력은 기존의 학습능력으론 전혀 쓸모가 없다. 그래서 SQ(영성지수)가 개발되기에 이르렀다.

사전에 SQ(영성지수)는 이렇게 소개되어있다. “기존의 가치를 인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가치를 창조적으로 발견하는 지능이기 때문에 IQ나 EQ가 나빠 학습능력이 떨어진다 하더라도 SQ가 좋으면 탁월한 리더십으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 나갈 수 있다. 고급전략장교, 종교인, 최고경영자(CEO) 등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한마디로 말해 사회는 우등생, 모범생 등 조직이 시키는 대로 하는 능력보다 다소 기존의 가치에 어긋나더라고 개척하는 능력을 더 필요로 하며 불확실한 삶을 살면서 가장 필요한 경쟁력이 아닐 수 없다. 그들에 의해 사회가 이끌어지고 있다는 것.

멀리 찾을 것도 없이 내 주위의 한 젊은이도 그랬다. 그는 가정교사는 물론이고 그 흔한 학원에 한번 다니지 않고 좁은 골목길에서 친구들과 어울리며 유수의 대학을 나와 대기업의 기획실에 입사했다. 남들은 비싼 사교육비에 외국 유학을 졸업장을 따서라도 갈망하는 자리를 돌고 돌지 않고 직행한 셈이다.

세태가 달라졌다. 우리 인터넷 사회는 교육정보, 지식이 넘치는 세상이다. 자기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시험 성적을 올릴 수 있다. 자녀가 시험 성적이 나쁜 이유는 다른데 있다. 타고난 소질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부모의 탓을 하기엔 너무도 달라진 세상이다.

서민들은 요즘을 IMF시절보다 더 어렵다고들 한다. 자녀 학원비를 줄여야하는 상황이라면 한 생각 바꿔보라. ‘드디어 우리 자녀도 주입식 교육에서 벗어나 최고의 웰빙 교육을 받게 되었구나’하고 말이다.

생각이 바뀌면 인생이 바뀌고 우리 인생이 바뀌면 사회가 바뀐다. 우리 사회에 말썽 장학금이 번성했으면 한다.(hoo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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