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내달 산업용 전기료 9% 인상키로
제조업체들 연간 1조 추가 부담 … 제품가 올라 물가상승 우려도


정부가 다음 달부터 전기료를 대폭 올리기로 방침을 정함에 따라 산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정부는 다음 달 중 산업용 전기료를 우선 8~9% 올리고,가정용 전기료는 10월께 1~2%가량 순차 인상할 것이라고 예고한 상태다.

산업계에서는 "가정용과 사무용 전기료는 거의 손대지 않으면서 산업용 전기값만 대폭 올리려는 것은 근시안적인 처사"라며 반발하고 있다. 고유가 등으로 원가부담이 높아진 가운데 전기료마저 오를 경우 기업들의 채산성이 더욱 악화되고,그 부담은 공산품 출고가격에 반영돼 가계 등의 주름살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전기료,너마저!

국내 제조업체가 한 해 동안 지불하는 전기료는 약 10조원에 이른다. 정부가 계획대로 산업용 전기요금을 올리면 국내 제조업체들은 다음 달부터 연간 1조원에 육박하는 추가 원가부담을 떠안아야 한다. 전력 사용량이 많은 철강 전자 유화업체들의 속앓이가 특히 심하다. 전기를 이용해 쇳물을 뽑아내는 주요 7개전기로(電氣爐) 업체의 연간 전기료는 7000억원을 웃돈다. 전기료가 9% 오르면 곧바로 600억원 이상의 추가 부담이 생기는 구조다.

전자업계도 사정은 비슷하다. 업체별 연간 전기료는 △삼성전자 4000억원 이상 △LG전자 1100억원 △LG디스플레이 1690억원 △하이닉스반도체 1600억원 등으로 앞으로 연간 100억~400억원가량의 전기료를 더 내야 할 판이다. SK에너지 GS칼텍스 삼성토탈 등 유화업계도 매년 1000억원 안팎의 전기료를 지불하고 있어 타격이 불가피하다.

◆산업계,"왜 우리만…"

정부와 한전은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한전의 경영실적이 악화돼 향후 정상적인 투자가 어려울 지경이라고 주장한다. 한전은 지난 1분기 중 2191억원의 영업수지 적자를 기록했다.

그러나 산업계는 "1998년 이후 10년 동안 한전의 누적 이익이 18조5000억원에 달하는데도 한 분기 적자가 났다고 금세 요금을 올리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반박한다. 게다가 발전설비 투자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한전의 6개 발전 자회사는 1분기 중 모두 흑자를 냈다. 이로 인해 지분법 평가이익이 늘어 한전은 지난 1분기에 영업수지는 적자가 났지만 3000억원 가까운 당기순이익을 거뒀다.

산업용 전기료를 가정용에 비해 더 큰 폭으로 올리려는 정부 방침에 대해서도 불만이 크다. 업계 관계자는 "산업용 전기의 60% 이상은 심야의 잉여전력"이라며 "산업용과 가정용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산업용 전기료만 꾸준히 인상돼 왔다는 것도 업계를 자극하는 요인이다. 1982년 이후 작년까지 산업용 전기료는 18.5% 인상된 반면 일반용 전기료는 오히려 20% 이상 인하됐다.

◆물가는 어떡하나

정부는 전기료와 함께 가스요금도 단계적으로 30~50%까지 올린다는 방침을 세워놓고 있다. 기업발(發) 코스트 푸시(cost-push) 인플레이션 압력이 그만큼 높아질 수밖에 없다. 통계청은 정부 방침대로 가정용 전기료와 가스요금이 오를 경우 소비자물가는 0.2%포인트 추가 상승할 것으로 추산했다.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5.5% 뛰었다. 9년7개월 만의 최대 상승폭이다. 민간연구소 관계자는 "산업용 전기료와 가스료 부담은 결국 소비자가격에 전가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전기.가스요금 인상이 근로자 임금으로까지 파급될 경우 상황은 더욱 악화된다. 업계 관계자는 "노사 임금협상에서 공공요금 인상은 노조 쪽에 강력한 명분을 주게 된다"고 우려했다.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