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23일 싱가포르 샹그릴라호텔에서 열린 6자 외무장관 회담에서 미국에 대북 적대시 정책을 전면 해제할 것을 촉구했다.

반면 미국은 북에 핵 검증 계획 이행을 요구하고,일본은 납치 문제 우선 해결을 촉구하는 등 처음 열린 6자 외무장관 회담이 각국의 입장차만 확인한채 막을 내렸다.

북한은 이날 회담에서 “우리 공화국은 성의있는 노력으로 핵신고서를 제출했고 핵 폐기 단계에서 냉각탑 폭파까지 다 했다”며 “미국도 테러지원국 해제 조치를 했는데, 좀 더 근본적이고 전면적인 조치를 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북한 리동일 외무성 군축과장은 회담 직전 기자들과 만나 “미국은 대조선 적대시 정책의 전면적 근본적인 해제를 이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북 경제에너지 지원 참여를 거부하고 있는 일본의 고무라 마사히코 외상은 이번 6자 외무장관 회담에서도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가 선결될 것을 요구했다.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미국이 제안한 핵 검증 계획서의 검토와 이행을 촉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기대를 모았던 6자 외무장관 회담이 이렇듯 겉돈 이유는 복잡하게 얽히고 있는 한반도 주변정세 때문이다.우선 한·미·일 공조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일본이 최근 독도 영유권을 중등 교과서 해설서에 명기하고 나서면서 한·일관계가 틀어져버렸다.

금강산 피격 사건으로 남한의 대북 경제 지원도 불투명해진 상황이다.6자회담 미국 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는 “6자회담이 양자 간의 문제라는 장외 변수에 의해 영향받지 않을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회담이 비공식적이고 급조된 회담이라는 점에서 만남 자체에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실제로 이날 6자 외무장관들은 북핵 검증체계를 확립하고 이를 이행하는 데 대한 각국의 의지를 재확인했다.

우리측 정부고위 당국자는 “6자 수석대표 회담에 이어 검증계획서 제출,테러지원국지정 해제 발효 등 앞으로 이어질 6자 관련 이벤트의 동력을 살려간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한편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6자 외무장관 회담에 앞서 이날 오전 라이스 국무장관과 한ㆍ미외교장관 회담을 갖고 북핵 검증체계 구축과 조지 부시 대통령의 다음 달답방,금강산 피격사건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싱가포르=임원기 기자 wonk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