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물려받고 10년 경영 잘하면 세금 감면
우리는 2010년부터 오히려 할증과세 '폭탄'


가업 승계의 최대 걸림돌은 상속·증여세.세금을 내기 위해 회사를 팔거나 아예 사업을 접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같은 이유로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스웨덴 포르투갈 홍콩 등은 가업 승계 기업의 상속·증여세를 폐지했다. 스페인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등은 사업을 지속할 경우 상속·증여세의 감면을 확대해주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가업을 승계하려는 중소기업에 대해 50%에 달하는 상속·증여세와 함께 '경영권 프리미엄세'까지 징수하겠다며 가업 승계를 압박하고 있다.


◆세금 때문에 빚더미에 앉거나 경영권 잃을 수도

경기도 화성에서 전자제품에 쓰이는 알루미늄 판을 생산하는 아또인터내셔널의 장학수 사장(64).주변에선 그를 놓고 '복 받은 인생'이라고 치켜세운다. 자동차 운전학원 원장에서 제조업체 사장으로 변신한 지 16년 만에 회사를 연 매출 250억원에 10억원이 넘는 순이익을 내는 '알짜기업'으로 키워냈기 때문이다. 3년 전 입사한 외아들은 "가업을 이어받겠다"며 회사 일에 푹 빠져 있어 후계자 걱정도 없다.

그렇지만 장 사장은 상속·증여세 문제로 고민이 이만저만 아니다. 장 사장이 보유한 아또인터내셔널 지분은 84%.지난해 외부 평가기관을 통해 추정한 주식 가치는 대략 240억원 수준.30억원이 넘는 상속·증여액에 대해선 50%의 세율이 적용되는 점을 감안하면 아들이 세금을 내기 위해 주식을 내다팔 경우 지분은 경영권이 흔들릴 수 있는 수준으로 떨어진다.

더구나 상속세법상 유예기간이 끝나는 2010년부터 중소기업 최대 주주가 보유 주식을 넘길 경우 '경영권 프리미엄'의 대가로 세금을 10~15%(대기업은 20~30%) 더 내야 한다. 장 사장은 "대를 이을 때마다 최대 주주의 보유지분이 급격하게 줄어들 수밖에 없는데 어떻게 '100년 가업'이 나올 수 있겠느냐"고 하소연했다.

◆현실 외면한 '경영권 프리미엄세'

국내 중소기업인들은 외국과 비교해 가업승계 기업의 상속·증여세가 너무 높다고 지적한다. 기업은행이 지난 4월 208개 거래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7.6%가 과도한 상속·증여세 때문에 폐업이나 도산 위기에 직면했다고 답했을 정도다.

현행 상속·증여세율은 △1억원 이하 10% △1억~5억원 20% △5억~10억원 30% △10억~30억원 40% △30억원 초과 50% 등 다섯 단계로 적용된다.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중소기업이라면 '세율 50%'를 피할 수 없다. 경영권 프리미엄에 따른 세금 할증까지 감안하면 창업주가 회사 지분을 100% 보유했더라도 가업을 승계하는 과정에서 2세 경영인이 최대 주주가 안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김기찬 가톨릭대학교 경영대학원장은 "결국 최대주주의 상속자가 회사 주식 외에 상당한 자금을 미리 꿰차고 있어야만 경영권을 온전히 물려받을 수 있다는 얘기"라며 "오너 측이 회사 경영에 '올인'하지 않고 부동산 등 별도의 재산을 형성할수록 가업승계가 유리하다는 것은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주요 선진국은 가업 상속을 지원하기 위해 분주하게 뛰고 있다. 일본은 2006년 상속세 최고세율을 70%에서 50%로 낮춘 데 이어 비상장 주식에 대한 상속세를 현행 '10% 경감'에서 '80% 납세 유예'로 완화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특히 전체 기업의 84%가 가족기업인 독일은 지난해 1월 헌법재판소가 상속세법 일부 조항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린 후 기민·기사당 연합과 사민당이 위원회를 구성하고 개정안을 마련,상·하원에 제출해 놓은 상태다. 골자를 보면 △상속 후 해당 기업이 10년간 사업을 지속하고 △10년 동안 근로자의 연간 임금총액이 상속 이전 연도의 70% 이하로 감소되지 않으며 △기업재산이 상속 이후 15년 동안 줄어들지 않는다는 조건을 모두 만족시킬 경우 사업용 자산에 대한 상속세 부과를 이자없이 10년간 유예시켜주며 상속세의 85%까지 감면 혜택을 준다는 것이다.

◆주식 매도 시점에서 내는 자본이득세 도입해야

가업 승계를 위한 상속·증여세를 파격적으로 낮춰야 한다는 주장은 이래서 나온다. 엄청난 세금으로 중소기업이 문을 닫는 것보다는 세율을 낮춰 기업이 계속 살아남도록 하는 것이 일자리 유지,세수 확대 등 국가경제에 훨씬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실제 중소기업연구원이 국내 1511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상속세를 납부한 뒤 퇴출되는 경우'와 '상속세 감면 후 기업을 계속 운영하면서 나오는 법인세 및 갑근세 규모'를 따진 결과 5년만 지나면 기업 운영으로 벌어들이는 세수가 상속세보다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1511개 중소기업 오너들이 내는 상속세(평균 지분율 48%)는 4조8970억원에 그치는 반면,5년간 회사가 내는 법인세와 임직원들이 납부하는 갑근세는 6조389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 것.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상속세 폐지가 시기상조라면 일단 최고세율을 '100억원 초과 30%' 정도로 낮추고 세금 공제액도 상속재산의 20%(최대 30억원)에서 50%(최대 200억원)로 끌어올려 '세금 때문에 멀쩡한 기업이 퇴출되는 상황'은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상속세를 폐지하는 대신 자본이득세를 도입하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2세 경영인이 회사 주식을 물려받은 시점이 아니라 처분하는 시점에 세금을 물리자는 것.가업을 승계할 뜻이 없다면 물려받은 회사 주식을 처분할 때 그만큼의 세금을 내도록 하고,가업을 이어갈 마음이 있다면 당장의 세금 부담을 없애주자는 것이다.

손영기 대한상공회의소 재정금융팀장은 "2세 경영자가 아무리 많은 회사 주식을 상속받아도 가업을 잇기 위해 내다팔지 않을 경우 '미실현 소득'이란 점에서 자본이득세를 도입하는 게 합리적인 측면이 있다"며 "상속·증여세율 인하와 자본이득세 도입 등 가업 승계의 걸림돌이 되는 세제들을 본격적으로 검토할 시점이 됐다"고 말했다.

오상헌·황경남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