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티그룹과 JP모건체이스 웰스파고 등 미국 주요 금융회사들이 당초 예상보다 좋은 2분기 실적을 발표하면서 미 금융위기 고비가 지나갔다는 안도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씨티은행은 2분기에 시장 예상치보다 나은 24억9500만달러의 순손실을 내는 데 그쳤다. 2분기 적자폭은 전 분기 51억3200만달러에 비해 절반 수준이다. 월가의 불안감은 프레디맥 등 양대 모기지회사 위기가 처음 불거졌을 때보다는 적지 않게 누그러진 게 사실이다. 하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신용위기는 진행형이며 최소한 연말까지는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파문에서 촉발된 미국발 금융위기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전문회사에서 헤지펀드를 거쳐 대형 투자은행으로 번지더니 이제는 국책 모기지회사와 상업은행 등 일반 금융회사로 불똥이 튀고 있는 상황이다. 그 과정에서 위기의 본질도 변하고 있다. 처음엔 일시적 자금 수급에 문제가 있는 '유동성 위기'였다. 지금은 죽느냐 사느냐는 '지급불능 위기',즉 '부도의 위기'로 질이 변하고 있다.


◆'금융위기 4파 진행 중'

서브프라임 파문이 처음 불거진 것은 작년 2월 말.HSBC가 서브프라임 모기지 중 부실이 20%에 달한다고 고백한 것이 계기가 됐다. 이후 금융위기는 4단계를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1단계의 주인공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전문업체.서브프라임이 대거 부실화되자 서브프라임을 전문적으로 취급했던 모기지회사들이 직격탄을 맞았다. 업계 2위였던 뉴센추리파이낸셜이 작년 3월 파산을 선언하는 등 전문업체들이 줄줄이 나가떨어졌다. 서브프라임 전문업체 대부분이 문을 닫거나 영업을 중단했다고 보면 될 정도로 서브프라임 모기지회사는 초토화됐다.

한동안 잠잠하던 파문은 그해 6월 말 2단계로 진화했다. 이번엔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기초자산으로 발행한 자산담보부증권(CDO) 값이 떨어지면서 여기에 집중 투자한 헤지펀드들이 문제가 됐다. 결국 작년 7월21일 베어스턴스가 운영 중인 헤지펀드 2개가 청산되는 등 모기지 관련 채권 비중이 많은 헤지펀드가 된서리를 맞았다. 지난해에만 40개(운용자산 186억달러)의 헤지펀드가 문을 닫았다. 헤지펀드만이 아니었다. CDS를 대거 편입했던 금융회사들도 깊은 내상을 입기는 마찬가지였다. 다만 헤지펀드는 견디기에 한계가 있었던 반면 규모가 큰 금융회사들은 다른 자산으로 '물타기'를 하고 있었을 뿐이다.
[Global Issue] 美 금융위기 '아직도 터널 속'

하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작년 10월이 되면서 씨티그룹과 메릴린치 등 대표적 투자은행(IB)들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3단계 위기가 엄습한 것.이들 IB는 중동의 국부펀드를 끌어들임으로써 위기를 넘기는가 싶었다. 그러나 순간이었다. 씨티그룹과 메릴린치는 작년 4분기에 각각 98억달러의 적자를 냈다. 급기야 지난 3월에는 미 4위의 투자은행인 베어스턴스가 사실상 파산하면서 JP모건체이스에 넘어가고 말았다.

베어스턴스 파문 이후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IB에도 긴급 자금을 빌려주기로 결정하면서 상황은 뚜렷이 호전됐다. 증시는 상승세를 탔고 신용경색은 완화됐다. '신용위기가 정점을 지났다'는 분석도 이 무렵 나왔다. 그렇지만 이달 들어 상황은 급변했다. 이번엔 유동성 위기가 지급불능 위기로 탈바꿈했다. 결국 미 7위의 저축ㆍ대부(S&L)조합인 인디맥뱅크가 지난 11일 영업정지됐다. 미 모기지 시장을 떠받치고 있는 양대 국책 모기지업체 패니매와 프레디맥도 뿌리째 흔들렸다. 정부의 긴급 구제책으로 한숨을 돌리긴 했지만 이제는 일반 상업은행이나 금융회사가 생존의 기로에 내몰리는 4단계 위기로 발전했다.

◆다음은 누구?


이렇게 작년 2월 말 촉발된 서브프라임 파문은 '서브프라임 전문 모기지회사→헤지펀드→대형 IB→국책 모기지회사 및 일반 상업은행' 등의 순으로 확대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사실상 모든 금융회사가 위기의 대상이 된 셈이다.

파문 초기만 해도 서브프라임 모기지나 관련 채권을 많이 갖고 있던 회사가 문제가 됐다. 관련 채권이 상대적으로 적었던 JP모건체이스나 뱅크오브아메리카가 돋보였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안전지대는 없어졌다. 미 주택 경기의 장기 침체로 서브프라임 모기지뿐만 아니라 우량 모기지도 부실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이 ATM(현금 자동입ㆍ출금기)이라고 부르는,주택을 담보로 한 일종의 마이너스 대출인 '홈에쿼티론'의 부실도 커지고 있다. 신용카드나 자동차 할부금융 등 다른 대출도 부실 비율이 동반 상승하면서 안전하다고 할 만한 금융회사는 거의 없는 상태다.

그러다보니 금융회사의 손실은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메릴린치의 경우 작년 3분기부터 지난 1분기까지 300억달러의 부실 자산을 상각 처리했다. 2분기에는 상각 규모가 50억달러 이내로 줄 것으로 기대됐다. 그러나 2분기 실제 손실 처리한 자산은 97억달러어치에 달했다. 35억달러는 모기지 등을 자산으로 한 CDO가 부실화된 탓이다.

이제 시장의 관심은 '다음은 누구냐'에 쏠리고 있다. 베어스턴스와 인디맥뱅크에 이어 간판을 내릴 금융회사가 어디냐는 의구심이다. 일각에서는 베어스턴스에 이어 모기지증권 인수 규모가 컸던 리먼브러더스를 지목한다. 메릴린치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미 최대 S&L조합인 워싱턴뮤추얼과 4위 상업은행인 와코비아가 위험하다는 분석도 적지 않다.

가장 위험한 건 중소 지방은행이다. 대형 금융회사는 어느 정도 버틸 수 있는 맷집을 갖고 있다. 손실이 늘어난 만큼 자본을 충당할 신용도와 매각 가능한 우량 자산도 상당하다. 하지만 중소 지방은행은 다르다. 뉴욕타임스가 애널리스트들의 전망을 인용해 연방예금보험공사(FDIC)의 예금보호 대상인 7500여개 금융회사 중 150여개가 내년까지 줄도산할 것이란 분석을 내놓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끝은 언제일까

금융위기론을 해소할 수 있는 근본 대책은 부실 증가를 막는 것이다. 부실 증가가 멈추면 금융회사들은 존망의 기로에서 생환할 수 있다. 그렇지만 불행히 전망은 '흐림'이다. 근본 원인인 주택 경기의 하락세가 여전하다. 집값은 사상 최대 하락률을 기록하고 있다. 일부 저가 주택을 중심으로 매기가 일고 있다고는 하지만 주택 거래는 계속해서 줄고 있다.

고유가까지 겹쳐 서민들의 생계는 갈수록 빠듯해진다. 그러다보니 모기지 부실이 늘어난다. 이는 금융회사들의 손실로 연결된다. 결국은 '주택 경기 침체 가속→모기지 부실 증가→은행 손실 증가→금융위기론 확산'이란 악순환이 확대되는 형국이다. 이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주택 경기가 살아나야 한다. 그렇지만 주택 경기 침체는 적어도 내년까진 이어질 전망이다.

그렇다고 비관론만 있는 건 아니다. 이미 상당액의 부실 자산을 털어낸 만큼 금융사의 부실 증가 속도는 둔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대형 금융회사가 안정될 경우 불안심리도 급속히 가실 수 있다. 유가가 하향 안정세를 탄다면 경제가 안정돼 부실 증가가 멈출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뉴욕=하영춘 특파원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