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전부터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트렌드 관련 서적들이 올 들어서는 조금씩 방향을 바꾸고 있는 것 같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증폭될수록 변화를 미리 읽으려는 수요가 늘어나고,트렌드 관련 서적이 인기를 끄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국내에 소개되고 있는 트렌드 서의 경향을 보면 단순히 '트렌드' 그 자체를 소개하는 책보다는 어떻게 트렌드를 읽을 수 있는지,트렌드가 전파되고 확산되는 메커니즘은 어떤 것인지를 밝혀 주는 책들이 늘고 있다. 트렌드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이런 변화는 상당히 반갑고 고무적이다. 그만큼 트렌드의 사회적 수요가 늘고 있다는 반증이기 때문이다.

《트렌드를 읽는 기술》은 이런 변화의 한 정점을 보여 주는 책이다. 남이 읽어 주는 트렌드를 보는 것이 훨씬 쉬운 일일 수 있지만,정작 자신의 관점에서 어떻게 적용하고 활용할 것인가라는 문제에 봉착하면 해법을 찾기가 쉽지 않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트렌드 워처(Trend watcher)가 되어야 한다. 자기 눈으로 트렌드를 확인하고 왜,그리고 어떻게 트렌드가 성장하는지를 관찰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 책은 그런 예비 트렌드 워처를 위한 상세한 가이드 역할을 해 준다.

저자인 헨릭 베일가드는 대학에서 사회과학과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한 후 사회적 경험을 쌓으면서 '트렌드 사회학'이라는 분야를 개척해 왔다. 그래서인지 트렌드 탐구 방법론에 대한 학구적 접근과 현실적인 경험,다양한 사례들을 녹여 내며 트렌드 확산 과정을 흥미롭게 비춰 보인다.

맥주 소비에 관한 트렌드의 사례를 보자.그는 1990년대 미국 대형 맥주회사들이 시장의 다양한 징후를 지속적으로 무시해 왔다고 지적한다. 이것은 트렌드 변화 과정에는 반드시 어떤 징후가 나타난다고 하는 트렌드 확산의 일반적 전개 과정을 잘 보여 준다.

우선 90년대 들어 미국인 사이에 건강과 다이어트에 대한 관심이 지속적으로 늘어났다. 이것은 미국인들이 고칼로리 주류인 맥주의 소비량을 줄일 수 있다는 신호이기도 했다. 또한 음주 문화의 변화와 더불어 와인의 인기가 나날이 올라가고 있었다.

와인은 맥주를 대체할 수 있는 상품이기 때문에 이 역시 맥주 소비에 영향을 끼친다. 또 개성화 트렌드의 확산으로 대량소비 품목으로서의 대형 맥주회사 제품에 대한 선호도가 줄고 대신 독특한 하우스 맥주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징후였다.

이렇게 시장에서는 맥주 소비의 변화 신호를 계속 보냈는데도 대형 맥주회사들은 이에 대응하지 못했다. 그 결과 갤럽의 조사에 따르면 1992년 전체 응답자의 47%가 가장 좋아하는 술로 맥주를 꼽았는데,2005년 조사에서는 36%만이 맥주를 가장 좋아하는 술이라고 답변했다. 맥주가 술 시장에서 주도적인 지위를 상실해 갔던 것이다.

이처럼 트렌드 변화에 대한 이해를 제대로 하고 있다면 기업은 충분히 변화에 대처할 시간적 여유를 가질 수 있다. 하지만 그 신호를 무시하면 결국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마는 것이다. 새로운 트렌드는 아무런 징후나 예고 없이 등장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트렌드의 탄생과 확산에 대한 이해를 갖고 시장이나 소비자가 보내는 신호를 꾸준히 관찰하다 보면 과거와 다른 태도와 취향으로 이행하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다. 이 책을 읽고 우리가 조금이나마 그런 변화를 가질 수 있다면 미래 예측의 시야가 한층 넓어지고 깊어질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트렌드 관찰자가 된다면 어디서 누구를 봐야 하는 걸까? 저자는 이 대목에서 트렌드 창조자(Innovator)와 트렌드 결정자(Trendsetter)에 주목한다. 그들은 바로 트렌드의 탄생과 확산의 비밀이다. 트렌드 창조자는 끊임 없이 새로운 도전과 모험을 즐기는 사람들이다. 트렌드 결정자는 트렌드 창조자가 생산해 낸 새로운 것들을 제일 먼저 소비하고 세상 속에 트렌드로 소개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트렌드 창조자와 결정자에 주목함으로써 새로운 변화를 파악하고 예측할 단초를 얻을 수 있다.

앞으로 100년,200년이 지나도 미래에 대한 완전한 예측 방법이 등장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변화로부터 필연적으로 야기되는 미래의 줄기들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것이 바로 트렌드다. 그렇게 보면 트렌드 읽기는 가장 현실적인 미래 예측 방법론의 하나다. 20여년간의 관찰을 통해 얻은 저자의 식견을 빌림으로써 우리도 미래를 볼 수 있는 트렌드 워처로 거듭날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일이 또 있으랴.

김경훈 한국트렌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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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나의 마케팅 성지순례기(권민 지음,고즈윈)


런던에만 46회 다녀온 국내 브랜드 기획자의 마케팅 여행서.바젤 커뮤니케이션 대표인 그는 런던의 4차원 세계를 보여주는 시장 탐색법,거리에서 트렌드와 상품의 심벌을 발견하는 법,택시를 통해 광고와 디자인 컨셉트를 배우는 법 등 기발한 관점으로 마케팅 감각을 일깨워 준다. 박물관에서 작품과 상품을 동시에 생각하는 마케터의 자세도 독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