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상품 가격 상승이 원자재 수출국에 마냥 좋은 것일까.

세계 자원부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살펴보면 아이러니하게도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석유 곡물 등 원자재 수출 비중이 높은 국가들도 자원 수입국이 받는 고통 못지않게 소득불균형 심화에 따른 사회ㆍ정치적 혼란과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7일 보도했다.

이른바 '자원의 저주(Resource Curse)'는 국가별로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석유 생산국인 아랍에미리트(UAE)에서 광물자원이 풍부한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이르기까지 자원 수출국들은 사회적 긴장 고조와 정치적 딜레마 등에 시달리고 있다.

남미도 예외가 아니다.

볼리비아와 아르헨티나에서는 자원 수출 가격 급등에 따른 과실을 누가 차지해야 하는지를 놓고 정치가와 자원 생산 기업가가 다투고 있다.

자원부국의 수출 호황에 따른 부작용은 간단히 해결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하다.

무엇보다 엄청나게 불어난 부가 공평하게 분배되지 못하면서 필연적으로 소득불균형을 초래한다.

부 분배에서 소외된 빈곤층은 식량 및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오히려 타격을 받는다.

사회적 불만이 누적되면 치명적인 폭력 사태로 비화하기도 한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빈민지역에서 외국인 이민자에 대한 연쇄 살인 사건이 발생한 것도 일자리를 얻지 못한 불만의 표출로 볼 수 있다.

일부 국가에서는 부의 재분배를 위해 복지지출을 확대함으로써 소비를 촉진하는 정책을 폈지만 오히려 역풍을 맞았다.

베네수엘라가 대표적인 사례다.

공격적인 복지재정 지출이 31%가 넘는 인플레이션을 유발하고 재정의 비효율과 부패를 초래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세계 3위의 밀과 콩 수출국인 아르헨티나에서는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대통령이 늘어나는 정부 지출을 감당하기 위해 곡물수출세를 인상하자 농부들이 몇 달 동안 파업으로 맞서 연초 극심한 식량난을 겪기도 했다.

사회적 혼란 심화로 아르헨티나 중산층 사이에선 자국 페소를 팔아 미 달러화를 사재기하는 현상도 나타났다.

5월에만 이렇게 해외로 빠져나간 돈이 20억달러에 달한다.

볼리비아에서는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이 지역 간 빈부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중앙정부의 자원 통제 권한을 강화하는 개헌을 시도하자 야권이 장악한 주 정부들이 차례로 독립을 선언하는 등 심각한 내분 양상을 보이고 있다.

자국 통화가치를 달러화에 연동시키는 중동 산유국들도 고물가로 흔들리고 있다.

카타르 UAE 등에서 고물가는 이미 사회적 문제로 자리잡았다.

그나마 브라질과 러시아는 원자재 수출로 벌어들인 돈으로 국가채무를 줄이고 부를 쌓았지만 '자원의 저주'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건 아니다.

브라질은 인플레를 막기 위해 정책금리를 인상했다.

이는 2004년 이후 달러 대비 45%나 오른 통화가치를 추가로 높여 제조업체의 수출에 타격을 줄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자원강국들에서 빚어지는 갈등과 혼란은 결국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세계 경제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아르헨티나의 농장 파업은 국제시장에서 콩 가격 급등을 불러왔고,볼리비아의 정정 불안은 역내 가스 공급 차질을 초래했다.

자원부국에 불어닥친 '승자의 재앙'은 갑자기 늘어난 부를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쉽지 않은 과제라는 교훈을 주고 있다.

이익원 기자 iklee@hankyung.com
'자원의 저주'…자원부국들 빈부격차 확대ㆍ인플레로 사회갈등 심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