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대한 산' 茶山…진면목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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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원 '다산' ‥ '웅대한 산' 茶山…진면목은 무엇인가
한승원씨, 정약용 삶 다룬 역사소설 '다산' 5년만에 완성
'지평선으로 떨어지는 해가 치자 색깔의 비낀 빛살을 실바람처럼 날려 보내주고 있었다. 그 사각의 빛살 속을 뚫고 정약용은 벗 이벽과 더불어 주어사를 향해 숲길을 걷고 있었다.'
작가 한승원씨(69)가 5년간의 연구와 집필 끝에 내놓은 새 역사소설 ≪다산≫(전2권,랜덤하우스)의 첫 문장이다.
이 도입부는 다음 장면으로 이어진다.
정약용은 이벽과 함께 가파른 자드락길을 힘겹게 기어 올라갔다.
그러자 두 남자가 나타났다.
한 사람은 하얀 사제복을 입은 서양인이고,또 한 사람은 붉은 옷의 중국인이었다.
정약용은 이벽이 하는대로 두 남자가 내미는 약을 섞어서 마셨다.
그랬더니 눈과 코와 귀가 환하게 열리고 밝아지면서 하늘과 땅의 깊은 내부까지 들여다보였다.
잠시 후 이벽이 정약용에게 두 남자를 소개했다.
"이 어르신은 성리학의 창시자인 주자(朱子)이시고,이 분은 ≪천주실의≫를 저술한 마테오 리치이십니다."
이 작품은 조선 후기 실학자이자 대문장가인 다산 정약용(1762~1836년·그림)의 일대기를 담고 있다.
공교롭게도 다산의 생일인 6월16일에 맞춰 출간됐다.
그동안 다산의 제자 초의선사를 다룬 ≪초의≫(2003년)와 다산의 형 정약전을 다룬 ≪흑산도 가는 길≫(2005년),다산의 후학 김정희를 다룬 ≪추사≫(2007년) 등을 잇달아 발표한 한씨가 마침내 다산을 정면으로 다룬 것이다.
소설은 '두 가지 약을 섞어 마신 정약용'이라는 첫 장면에 이어 다산이 결혼 60주년 회혼일(回婚日)에 친척과 가족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숨을 거두는 장면,정조 임금의 승하 후 1801년 서용보의 간언으로 다산이 형제들과 함께 잡혀들어가는 장면,다시 정조의 총애를 받으며 참 선비의 길을 걷던 때를 앞뒤로 직조해서 펼쳐 보인다.
여기에 다산의 행적과 함께 강직하고 청렴한 선비로서의 모습,그의 철학과 사상,인간적인 면모 등을 오버랩시킨다.
특히 어릴 때 주자학을 배우고 성년이 된 뒤에는 천주학의 여러 저서를 접하며 '양날의 거대한 가위'로 세상을 읽은 다산의 철학을 씨·날줄로 엮어낸 대목이 돋보인다.
작가는 "나그네새처럼 서울살이하던 나를 전라도 장흥 바닷가의 토굴로 끌고 내려와서 가두어놓고 기르면서 선생의 사업을 흠모하고 본받으며 살아온 지 올해로 13년째"라며 "다산의 사상과 철학을 옷감을 재단하는 가위에 비유한다면,주자학이라는 한쪽 날 위에 천주학이라는 다른 한쪽 날을 가새질로 포개고 그 한가운데 사북으로 박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수많은 준봉들을 푸른 하늘 속에 깊이 묻고 있는 보랏빛의 영검하고 웅대한 산이 다산"이라면서 "다산과 사귄 후 술병이 들어 요절한 혜장 스님은 그 산에서 길을 잃은 사람이고 다산과 더불어 속이 더 깊어진 초의 스님은 산을 잘 탄 사람인데 나는 다산을 잘 타려고 무진 애를 썼다"고 덧붙였다.
다산과 관련된 작품을 세 편이나 미리 쓴 연유를 '정약용이란 산에 들어와서 길을 잃지 않으려면 무작정 들어오지 말고 일정한 거리를 두고 접근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에둘러 표현한 작가의 속내가 더욱 깊어보인다.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
'지평선으로 떨어지는 해가 치자 색깔의 비낀 빛살을 실바람처럼 날려 보내주고 있었다. 그 사각의 빛살 속을 뚫고 정약용은 벗 이벽과 더불어 주어사를 향해 숲길을 걷고 있었다.'
작가 한승원씨(69)가 5년간의 연구와 집필 끝에 내놓은 새 역사소설 ≪다산≫(전2권,랜덤하우스)의 첫 문장이다.
이 도입부는 다음 장면으로 이어진다.
정약용은 이벽과 함께 가파른 자드락길을 힘겹게 기어 올라갔다.
그러자 두 남자가 나타났다.
한 사람은 하얀 사제복을 입은 서양인이고,또 한 사람은 붉은 옷의 중국인이었다.
정약용은 이벽이 하는대로 두 남자가 내미는 약을 섞어서 마셨다.
그랬더니 눈과 코와 귀가 환하게 열리고 밝아지면서 하늘과 땅의 깊은 내부까지 들여다보였다.
잠시 후 이벽이 정약용에게 두 남자를 소개했다.
"이 어르신은 성리학의 창시자인 주자(朱子)이시고,이 분은 ≪천주실의≫를 저술한 마테오 리치이십니다."
이 작품은 조선 후기 실학자이자 대문장가인 다산 정약용(1762~1836년·그림)의 일대기를 담고 있다.
공교롭게도 다산의 생일인 6월16일에 맞춰 출간됐다.
그동안 다산의 제자 초의선사를 다룬 ≪초의≫(2003년)와 다산의 형 정약전을 다룬 ≪흑산도 가는 길≫(2005년),다산의 후학 김정희를 다룬 ≪추사≫(2007년) 등을 잇달아 발표한 한씨가 마침내 다산을 정면으로 다룬 것이다.
소설은 '두 가지 약을 섞어 마신 정약용'이라는 첫 장면에 이어 다산이 결혼 60주년 회혼일(回婚日)에 친척과 가족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숨을 거두는 장면,정조 임금의 승하 후 1801년 서용보의 간언으로 다산이 형제들과 함께 잡혀들어가는 장면,다시 정조의 총애를 받으며 참 선비의 길을 걷던 때를 앞뒤로 직조해서 펼쳐 보인다.
여기에 다산의 행적과 함께 강직하고 청렴한 선비로서의 모습,그의 철학과 사상,인간적인 면모 등을 오버랩시킨다.
특히 어릴 때 주자학을 배우고 성년이 된 뒤에는 천주학의 여러 저서를 접하며 '양날의 거대한 가위'로 세상을 읽은 다산의 철학을 씨·날줄로 엮어낸 대목이 돋보인다.
작가는 "나그네새처럼 서울살이하던 나를 전라도 장흥 바닷가의 토굴로 끌고 내려와서 가두어놓고 기르면서 선생의 사업을 흠모하고 본받으며 살아온 지 올해로 13년째"라며 "다산의 사상과 철학을 옷감을 재단하는 가위에 비유한다면,주자학이라는 한쪽 날 위에 천주학이라는 다른 한쪽 날을 가새질로 포개고 그 한가운데 사북으로 박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수많은 준봉들을 푸른 하늘 속에 깊이 묻고 있는 보랏빛의 영검하고 웅대한 산이 다산"이라면서 "다산과 사귄 후 술병이 들어 요절한 혜장 스님은 그 산에서 길을 잃은 사람이고 다산과 더불어 속이 더 깊어진 초의 스님은 산을 잘 탄 사람인데 나는 다산을 잘 타려고 무진 애를 썼다"고 덧붙였다.
다산과 관련된 작품을 세 편이나 미리 쓴 연유를 '정약용이란 산에 들어와서 길을 잃지 않으려면 무작정 들어오지 말고 일정한 거리를 두고 접근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에둘러 표현한 작가의 속내가 더욱 깊어보인다.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