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세종문화회관에서 뉴욕 필하모닉의 내한공연이 있었다.

당시 예상을 뛰어넘은 우리 국가대표팀의 선전에 전 국민적으로 '대~한민국' 열풍에 휩쓸리던 때이기도 하다.

이런 분위기를 알았던 뉴욕 필하모닉 단원들은 커튼콜 연주에서 전원이 붉은 악마 티셔츠를 입어 뉴욕 타임스에 크게 보도되기도 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LG 아트센터에서 공연 중이던 '오페라의 유령'은 공연이 끝나고 배우들이 커튼콜 시간에 관객에게 승리 소식을 전해 환호를 받은 일도 있었다.

하지만 한·일 월드컵이 이렇듯 공연계에서 환영만 받은 것은 아니었다.

사실 사람들의 관심이 월드컵에만 쏠리면서 그 직격탄을 공연계가 맞았기 때문이다.

당시 경기 시간과 겹치는 공연의 경우 아예 관객이 없어 취소되는 사례가 비일비재했다.

이렇게 되자 일부 공연은 어렵게 공연장을 찾은 관객들에게 보답하는 차원에서 발빠르게 축구 소식을 공연 말미에 깜짝 소개하는 일도 종종 있었다.

요즘 공연계에는 6년 전과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협상을 요구하는 촛불 시위가 전국적으로 번지면서 공연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시국이 시국이니 만큼 공연이나 볼 시간이 없다는 식의 인식이 퍼져 있는 것.게다가 공연계의 주 고객인 젊은 계층이 대거 촛불 시위에 동참하느라 공연계는 일부 브랜드 파워가 높은 공연을 제외하고 대부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촛불 시위가 최고조에 이르렀던 지난 10일 저녁,공교롭게도 시위의 중심지에 자리잡은 세종문화회관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마침 이날 해외 투어팀의 개막이 예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전날까지만 해도 공연장 주변 지하철역은 무정차 계획을 검토한 데다 이날 아침 주변에는 거대한 컨테이너 바리케이드가 세워져 공연장 접근 자체가 불가능에 가까웠다.

우여곡절 끝에 주최 측은 어렵사리 개막을 치러냈다.

이 외 연극 뮤지컬 무용 등의 공연도 한결같이 저조한 흥행 성적을 이어가고 있다.

경제가 어렵다 보니 사람들이 우선 소비를 줄이는 항목이 문화비임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이에 따라 공연업체들도 완성도 높은 작품성과 합리적인 티켓 가격을 찾기 위해 애쓰지만,이들도 '촛불 시위 정국'이라는 예기치 못한 변수 앞에서는 무력해질 수밖에 없다.

촛불 시위의 정당성 여부를 굳이 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주장이 있고 그것을 피력할 권리가 있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다만 광화문 일대에 촛불이 수십만개가 켜져도 그 많은 촛불들이 '모든 이'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 또한 아닌 듯하다.

최소한 공연계에 몸담고 있는 이들에게 반갑지만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 조용신 공연 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