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는 성장 위주의 MB노믹스를 포기한 것인가,아니면 이보전진(二步前進)을 위한 일보후퇴(一步後退)를 선택한 것인가.

한나라당 조윤선 대변인과 임태희 정책위의장이 11일 잇따라 나서 "대운하와 공기업 민영화를 후순위 과제로 미루고 정책역량을 민생안정대책에 집중하겠다"고 말한 것을 놓고 그 배경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촛불을 앞세운 시민들의 거대한 함성에 겁을 먹어 성장정책을 내던진 것인지,아니면 이번에 후퇴하는 모양새를 취한 뒤 다시 힘을 모아 공기업 민영화 등 개혁과제를 강력히 추진하겠다는 것인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공기업 민영화.대운하 후퇴

지난해 말 대통령 선거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압도적 지지를 받은 것은 경제 성장에 대한 국민의 열망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다.

현실성에 문제가 있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7% 경제성장을 핵심으로 하는 747공약이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MB노믹스의 핵심은 △공기업 민영화를 통한 공공부문 효율 향상 △규제 철폐를 통한 기업투자 촉진 △대운하 건설 등 재정사업을 통한 경기 활성화 △기업.부동산 관련 세금 완화를 통한 민간부문 활력 제고 등이었는데,이 같은 정책들의 우선순위가 일제히 밀리면서 전면 재조정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렸다.

이명박 정부는 공기업 민영화 계획을 처음에는 지난 5월 말 발표할 예정이었고,그 뒤에는 일부 재조정을 거쳐 6월 중순 발표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촛불집회로 공기업 민영화 자체가 불투명해졌다.

공기업 민영화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추진된 과제였다.

그러나 해당 공기업과 노조의 반발로 번번이 무산될 만큼 쉽지 않은 과제다.

이번에는 집권 초기부터 밀어붙여 민영화를 꼭 달성하겠다고 다짐했지만 촛불집회로 탄력을 잃어버렸다.

촛불집회에 이어 공기업 노조의 파업 등 노동계의 반발까지 겹칠 경우 정권의 존립 자체가 위험해질 것으로 봤다.

한반도 대운하 공약도 '바람 앞의 등불' 신세다.

이명박 대통령 임기 내에 준공한다는 목표 아래 내년 상반기에는 착공한다는 복안을 갖고 있었지만 사실상 무산됐다.

이에 따라 사업을 준비해온 민간 건설업체들뿐만 아니라 해당 지역의 주민,건설노동자들의 피해가 우려된다.

◆세제개편 규제완화도 힘 빠질 듯

이와 함께 1주택 장기보유자 종합부동산세 완화와 과세기준 상향 조정 등 부동산 관련 세금제도 개편과 금융.산업자본 분리규제 완화 등의 정책도 힘을 잃을 것으로 보인다.

이 정책들이 서울 강남과 재벌들을 위한 정책이라는 공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각과 청와대 비서진을 채우는 과정에서도 '강부자'논란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힘이 빠진 정부가 세제개혁과 규제완화를 제대로 추진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로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부동산 세제 완화 등은 현재로서는 불가능하다"고 밝히는 등 개혁 정책을 뒤로 미루는 일이 전방위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과 김중수 청와대 경제수석,곽승준 국정기획수석을 포함한 이명박 정부의 경제팀이 어떻게 재편될 것인지도 관심이다.

강 장관은 세제개혁과 경제성장을 이끌어왔고 곽 수석은 한반도 대운하와 공기업 민영화 등 대형 프로젝트들을 맡아왔다.

청와대와 정부 사이에서 조정자 역할을 맡은 김 수석의 거취도 주목된다.

◆조만간 개혁전선 복귀 시도할 듯

이명박 정부가 공기업 민영화와 세제개혁을 포함한 개혁정책을 완전히 포기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발등에 불이 떨어졌기 때문에 민생안정 등 현안을 먼저 다루는 것일 뿐 규제완화를 포함한 개혁과제들은 앞으로 지속적으로 추진할 것이라는 얘기다.

재정부 관계자는 "부동산 세제완화와 규제개혁 등을 지금 추진하면 성사되지 않기 때문에 후순위 과제로 바꿔놓은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청와대 관계자도 "상황을 좀 더 지켜보자"고 말했다.

상황이 바뀌면 개혁전선에 복귀를 시도하지 않겠느냐는 얘기도 했다.

하지만 청와대와 정부,한나라당이 한반도 대운하 등을 뒤로 미룬 것이 '민심을 수습하는 게 급선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 할지라도 촛불집회에 밀려 노선을 수정한 이상 개혁 전선으로 다시 복귀하기가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정권 후반기로 접어들수록 권력의 힘이 빠지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이번 개각이 얼마나 국민의 지지를 받을 것인지,위기에 빠진 '이명박 일병 구하기'에 국민이 얼마나 지지를 보여줄 것인지에 달려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현승윤 기자 hyun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