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대통령 '읍참마속' 나서나
정두언 "인사실패 책임자 거취 결정해라"

청와대 '왕(王) 비서관'으로 불려왔던 박영준 기획조정비서관이 9일 전격 사표를 제출하면서 여권 내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권력 투쟁'양상이 새 국면을 맞고 있다.

박 비서관은 최근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으로부터 '국정 난맥 진원지'라는 비판과 함께 사퇴 압박을 집중적으로 받아왔다.

박 비서관의 사표 제출은 정 의원의 '당청(黨靑) 4인방 폐해'발언 이후 나왔다는 점에서 이 대통령이 청와대와 내각 개편에 앞서 주변 정리에 나선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청와대 쇄신폭 커질 듯

박 비서관은 이날 류우익 대통령 실장에게 사표를 제출하며 "최근 본인과 관련된 논란으로 대통령께 누가 된다면 청와대에 한시라도 더 머물 수 없다"는 이유를 달았다.

정 의원의 "권력을 사유화하고 있다"는 발언으로 촉발된 '권력 투쟁'양상이 자칫 인적 쇄신을 앞둔 이 대통령에게 부담을 줄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정 의원이 이날 "인사 실패의 책임자는 거취를 결정하라"고 거듭 압박을 하는 상황에서 그 자리에 계속 머물러 있을 경우,여권 내 권력 다툼이 더 심화되면서 민심 이반을 가속화할 수 있다.

이는 결국 이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발목이 될 수 있다는 점이 박 비서관의 결단을 재촉한 요인으로 분석된다.

정 의원의 주장이 한나라당 소장파 의원들로부터 상당한 공감을 얻고 있는 것도 박 비서관을 물러나게 한 요인으로 보인다.

박 비서관의 사표 제출은 이미 사의를 표명한 청와대 참모들을 대폭 물갈이하는 신호탄으로도 해석된다.

이 대통령의 '복심'으로까지 불린 박 비서관의 사표 제출엔 이 대통령의 의중이 어느 정도 담겨 있는 것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특히 이 대통령은 사표 제출 전에 박 비서관과 한 시간가량 면담한 것으로 알려져 이 같은 분석에 무게를 실어준다.

박 비서관은 1994년 이상득 의원의 보좌관으로 정계에 입문한 뒤 이 대통령의 서울시장 당시 정무국장 등을 지내다 새 정부 출범 때 조각과 청와대 비서진 인선에 깊숙이 개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비서관이 사표를 냈지만 여권의 갈등이 빠른 시일 내에 봉합될지는 미지수다.

정 의원은 박 비서관뿐만 아니라 류 실장도 겨냥하고 있기 때문이다.

류 실장과 '국정 난맥 진원지'로 꼽히는 또다른 모 비서관의 거취도 주목된다.

박 비서관의 사표 제출에 대해 정 의원 측은 "청와대 인사 파동의 책임자인데 당연한 수순이 아니냐"는 반응을 보였다.

◆당,대대적 쇄신 압박

이에 앞서 정 의원은 의원총회에서 "인사쇄신을 한다면서 인사 실패의 책임자는 그대로 있고 실패한 인사의 결과만 바꾸면 어떻게 하느냐"며 "이제 책임질 사람들이 각자 자기 거취를 결정하면 된다"고 박 비서관 등을 거듭 공격했다.

한나라당은 이날도 대대적 쇄신을 주문하며 청와대를 압박했다.

또 다른 인사 실패의 당사자로 지목된 이상득 의원은 "내가 인사에 간섭한다는 얘기가 있는데 이는 대통령의 인사 권한을 모독하는 것"이라고 정면 반박했다.

홍영식/유창재 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