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가로 인한 국내 소비자물가 급등이 소비자들의 심리를 위축시키고 내수 침체를 야기하는 '경기 둔화 악순환'이 본격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수출 호조 덕분에 산업생산은 그런대로 괜찮은 편이지만 내수 관련 실물지표(소비재판매)와 심리지표(소비자기대지수)가 동시에 무너지는 양상을 보이면서 경기 침체에 대한 공포가 국내 경제주체들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

◆소비심리 '급락'

통계청은 5월 소비자전망 조사에서 6개월 뒤 경기 생활형편 소비지출 등 전반적인 경제 여건에 대한 기대를 나타내는 소비자기대지수가 92.2로 집계됐다고 9일 발표했다.

전달(100.4)에 비해 8.2포인트 급락해 기준치(100)를 훨씬 밑돌았다.

지수가 100 아래로 내려갔다는 것은 6개월 뒤 경제 여건을 비관적으로 보는 가구가 더 많다는 의미다.

소비자기대지수가 이처럼 큰 폭으로 하락한 것은 2000년 11월(8.3포인트) 이후 7년6개월 만에 처음이다.

소비자기대지수는 3월 99.7에서 4월 100.4로 반짝 상승했으나 이번에 기준치를 지켜내지 못하고 무너졌다.

특히 경기에 대한 기대지수가 4월 93.8에서 5월 77.9로 무려 15.9포인트 하락하면서 전체 지수 급락을 주도했다.

생활형편에 대한 기대지수(95.0)는 4월(100.1)보다 5.1포인트 떨어졌고 소비지출에 대한 기대지수(103.8) 역시 3.5포인트 하락했다.

◆치솟는 물가에 심리 위축

김영노 통계청 분석통계팀장은 "5월에 물가가 많이 오른 것이 소비자 심리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5월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4.9% 오르며 작년 말 이후 시작된 물가상승세가 가속화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공업제품(5.8%)과 개인서비스가격(4.4%)이 높은 상승세를 지속했다.

송준혁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소득은 제자리인 가운데 주위에 오르지 않은 게 거의 없다는 느낌을 받다 보니 소비자들이 심리적인 위축감을 더욱 크게 느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가 상승세 확대는 저축성 금융자산 보유자들의 '자산에 대한 평가'를 위축시키는 부작용도 초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6개월 전과 비교한 현재 자산가치에 대한 주관적 평가를 나타내는 자산평가지수에서 주택 및 상가(100.2→101.3) 토지 및 임야(101.2→102.5) 주식 및 채권(85.7→89.5)은 상승했지만 금융.저축(96.7→96.0)은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 침체 속도 빨라질듯

소비자들은 향후 경기에 영향을 줄 첫 번째 요인으로 '유가 등 물가'(75.8%)를 꼽았다.

KDI는 이날 발간한 '6월 경제동향'에서 "지금의 물가 상승 국면이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우리 경제가 내수를 중심으로 완만한 경기 둔화세를 보이는 상황에서 지금과 같은 물가 상승세가 이어진다면 소비자들의 심리는 더욱 위축돼 경기 침체 속도가 점점 빨라지는 '악순환'이 우려되는 상황인 것이다.

KDI는 "내수 관련 지표가 승용차 등 내구재를 중심으로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지만 신차 효과가 없어지는 5월에는 내구재 증가세가 둔화할 가능성이 있다"며 "4월 설비투자추계 역시 반도체 장비의 투자 부진으로 2.0% 감소했다"고 밝혀 내수발(發) 경기 침체 가능성을 걱정했다.

차기현 기자 kh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