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한국상회 회장으로 선출된 우남균 LG전자 중국본부 사장

중국 시장은 '정글 마켓'으로 불린다.

'약육강식'이 벌어지는 정글처럼 경쟁이 치열하다.

글로벌 기업과 토종 기업들이 뒤섞여 피말리는 싸움을 한다.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의 수는 5만개 정도.이들의 모임인 중국한국상회 회장으로 우남균 LG전자 중국본부 사장이 지난달 말 선출됐다.

중국 베이징 시내에서 톈안먼을 잇는 창안제 대로에 위치한 LG의 쌍둥이빌딩 쌍즈다샤 21층 사장실에서 지난 6일 우 회장을 만났다.

―회장에 취임하자마자 이명박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했는데 대통령께서는 어떤 당부를 하셨습니까.

"코리아 브랜드의 가치를 높여 달라고 당부하셨어요. 한국 기업이 과거처럼 앞으로도 중국에 필요한 기업이 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셨지요. 취임한 지 얼마되지 않은 기간이었는데 중국에 대한 이해가 깊고 중국 진출 한국 기업들의 상황에 대해 소상하게 파악하고 계시더군요. 저 역시 중국한국상회 회장으로서 코리아라는 브랜드가 중국에 확실하게 뿌리내려 가치를 높여가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중국은 과거 노동력과 마켓이라는 두 개의 파워 요소가 있었는데 이젠 기술과 자금 측면에서도 막강한 힘을 가진 것 같습니다. 현장에서 보는 중국 기업의 발전속도는 어떤가요.

"발전속도가 너무 빨라 이를 잴 수 있는 스피드 건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중국 업체들도 저가 노동력을 바탕으로 한 제조업은 베트남이나 미얀마 등 좀 더 인건비가 싼 곳으로 이전하고 있습니다. 특히 중국 기업가들이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게 무섭습니다. 소위 '헝그리(hungry) 정신'이 있지요. 한국도 한때는 그런 정신이 있었습니다. 과거 70년대와 80년대에 세계 전자시장은 기술경쟁이 치열해지며 가전제품 가격이 연평균 20%씩 내려갔는데 그런 상황에서 한국 기업들이 살아남아 글로벌 메이커로 올라선 것은 바로 헝그리 정신이 바탕이 된 성실성 덕분이었지요. 지금 중국 기업은 그때의 한국 기업과 비슷합니다."

―한국 기업이 재무장하지 않으면 곧 추월당하겠군요.

"정신적으로 재정비만 한다면 아직 중국 기업들과 비교해서 경쟁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쉽게 추월당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노동력이 무기인 산업 분야에서는 분명 중국 기업들이 경쟁력이 있지만,세계 시장에서의 경쟁은 다릅니다. 외국 시장 진출 노하우라든가,특히 세계 시장에서 중요한 글로벌 스탠더드나 시장의 변화를 읽는 통찰력 등은 중국 기업이 고민을 많이 해야 하는 분야입니다. 한국 기업들은 이런 분야에서 아직 비교우위가 있습니다. "

―중국과 손잡지 않고는 비즈니스가 불가능하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어떤 점에서 중국이 그렇게 중요합니까.

"지난번 한·중 정상회담에서 양국 관계가 '전면적 협력 동반자 관계'에서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한 단계 격상됐지요. 전략적 협력이란 표현은 말 그대로 없으면 안 되는 그런 관계를 말합니다. 예를 들어 LG그룹은 전체 매출의 30%인 300억달러가 중국에서 발생합니다. 이 중 80%는 중국 이외 지역으로 수출한 것입니다. 중국이 없으면 그 수출 물량은 생산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중국을 떼어 놓고 글로벌 전략을 얘기하는 것은 불가능하지요. 중국의 중요성은 엄청난 시장뿐 아니라 글로벌 전략의 중심지로 부상하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전략적 협력은 말씀하신 것처럼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여야 하는데 중국에서 한국 기업의 필요성은 점점 약해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요.

"한국에는 국제화를 이룬 기업들이 많지만 중국은 아직 그런 기업이 많지 않습니다. 중국 기업에 한국 기업의 도움이 필요한 부분이지요. 사실 기술이나 자금 면에서 중국 기업들은 너무나 빠르고 큰 발전을 이뤘습니다. 이제 글로벌 무대로 나가려는 움직임을 구체화하기 시작했지요. '저우추취(走出去·밖으로 나가자)'로 표현되는 중국의 해외 진출 전략은 글로벌라이제이션을 염두에 둔 것입니다. 한국 기업은 글로벌 네트워킹은 물론이고,무역과 관세 장벽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 많은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또 변화를 읽을 줄 아는 안목과 축적된 소프트웨어,경험에 따른 판단 능력은 중국이 앞으로 필요로 하는 것들이죠.예를 들면 세계 시장에 나가기 위해서는 지나치게 중국적인 제품보다는 글로벌화가 가능한 중국적인 것,또는 세계인의 시선을 끌 만한 디자인에 중국적인 특색을 가미한 것이 더 나은 제품이라는 게 입증됐는데 이런 것은 한국 기업인이 중국 기업인보다 더 먼저 압니다."

―글로벌라이제이션만을 위해 한국 기업을 전략적 파트너로 삼기는 어려운 것 아닐까요.

"중국이 지금의 세계 경제 환경을 이겨내는 데는 한국이 필요합니다. 과거 70,80년대 일본이 급성장하자 미국으로부터 엄청난 환율 절상 압박에 시달렸지요. 당시 엔화 가치가 달러당 360 대 1 수준에서 78 대 1로 치솟았습니다. 하지만 일본은 살아남았는데,어려워진 경영 환경의 돌파구로 한국 기업과의 분업 체제를 택한 것입니다. 기술을 이전해주고 한국에서 제품을 생산,판매하면서 어려움을 이겨 나간 것이지요. 글로벌 경제의 새로운 강자로 부상하는 중국의 현 상황이 당시와 비슷하다고 봅니다. 전 세계로부터 통화 절상 압박에 시달리며 고전하고 있지만 상생할 동반자를 찾는다면 극복할 수 있는 문제이지요. 동양적 정서를 바탕으로 한 한국 기업은 매력적인 파트너라 할 수 있습니다."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의 성공적인 비즈니스 전략은 무엇입니까.

"한국 기업들은 중국 진출 초기 노동집약적 산업에 집중했는데 이것은 이제 무의미합니다. 중국 기업과의 무조건적인 경쟁도 지양해야 합니다. 중국 기업들은 소유구조나 정부 정책 측면에서 '쉽게 망하지 않는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가면 교과서를 바꿔야 하고,계절이 변하면 옷을 갈아 입어야 하듯 중국의 변화에 우리가 맞춰야 합니다. 중국의 경영 환경은 이제 저가 노동력을 이용한 비즈니스 모델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과거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어려운 시장이었다면,이제는 중국이 세계에서 가장 어려운 시장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세계 기업들이 무한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차별화'가 중요한 키워드가 될 것입니다. 제품도 차별화하고 사업모델도 차별화해 나만의 경쟁력을 갖추는 게 중요합니다. 그렇지 못한 기업은 중국에 진출해도 성공하기 어렵다고 봅니다."

―한국상회 회장으로 한국 기업들을 어떻게 이끌고 나갈 생각이신지.

"코리아 브랜드는 우리 국민과 기업 모두가 종합돼 만들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코리아 브랜드를 끌어올릴 수 있도록 한국상회 차원에서 중국의 오피니언 리더들과 대화하는 기회를 많이 만들 생각입니다. 또 간담회나 강연 등을 통해 서로 생각을 교환하며 윈윈할 수 있도록 할 계획입니다. 미국 일본 이탈리아 등 다양한 국가의 상회와도 교류를 활성화할 것입니다. 중국의 글로벌화가 진행되면서 외국 상회의 역할이 커질 것인 만큼 상회도 국제화해야 합니다."

베이징=조주현 특파원 fore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