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장 밑에 약졸 없다'는 말이 있다.

와인에도 이 격언은 꽤 들어맞는다.

세계적인 와이너리들은 명성에 흠이 가지 않도록 대중용 와인에도 신경을 많이 쓴다.

프랑스 북부 론 지방의 최고 와이너리로 평가받는 에티엔 기갈(Etienne Guigal)의 '코트 뒤 론 루주(Cotes du Rhone Rouge) 2003'이 대표적이다.

1946년에 설립된 에티엔 기갈은 전 세계 와이너리 중 로버트 파커로부터 100점 만점 와인을 가장 많이 배출한 곳으로 유명하다.

'라라라' 시리즈로 불리는 '라 물린느(La Mouline)''라 랑돈드(La Landonne)''라 투르크(La Tourque)'가 총 18번이나 만점을 받았다.

에티엔 기갈의 마르셀 기갈 회장과 아들인 필립 기갈 와인메이커가 지난달 29일 방한했다.

필립 기갈은 '코트 뒤 론 루주'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와인메이커의 노력이 가장 필요한 와인이 '코트 뒤 론 루주' 같은 대중용 와인이다.

사실 특급 와인의 품질은 자연이 결정한다.

그러나 총 800곳에서 공급받은 포도를 모아 매년 균일한 품질을 만드는 일은 모두 인간의 몫이다."

'코트 뒤 론 루주 2003'은 국내 판매가격이 3만원.중저가 와인임에도 평단으로부터 상당히 높은 평가를 받았다.

로버트 파커는 88점을,와인스펙테이터는 87점을 줬다.

이런 걸 와인 마니아들은 '밸류 와인(value wine)',즉 가격 대비 품질이 좋은 와인이라고 부른다.

'파커 포인트' 88점은 꽤 의미가 있다.

파커는 '샤토 마고' 같은 특급 와인이라도 별 볼일 없는 빈티지라면 90점 이하의 점수를 주곤 했다.

와인명을 풀이하면,'코트 뒤 론'은 지명이고 '루주'는 영어로 '레드(red)'를 뜻한다.

'코트 뒤 론의 포도로 만든 레드 와인' 정도로 해석된다.

론이나 부르고뉴 와인 중에 '루주'가 붙으면 보통 중저가 와인을 뜻한다.

와이너리들은 보통 직접 재배한 포도밭에서 생산된 포도로 와인을 만들면 라벨에 포도밭이 위치한 마을 이름을 넣는다.

코트 뒤 론의 와인들이 대개 쉬라즈 품종을 100% 사용하는 데 비해 '코트 뒤 론 루주 2003'은 쉬라즈(55%)를 바탕에 깔고,그라나슈(35%) 등 다른 품종들을 섞은 게 특징이다.

검은색 과일류의 향과 바닐라를 연상시키는 달콤함,기분 좋을 만큼의 가죽향이 매력적이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