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美행정부.의회 설득에 총력 기울여야"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 대사의 '재협상 없다'는 발언을 놓고 해석이 분분하다.

버시바우 대사의 말은 한국 정부와 국민이 원하는 재협상 요구를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의미로 들린다.

양국이 국제기준에 따라 협상을 타결한 만큼 이를 뒤엎어야 하는 재협상은 사실상 어렵다는 원론적인 수준의 입장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서진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국은 통상현안에 대해서는 원칙을 중시하는 국가"라며 "특히 일본 대만 등 다른 국가와의 쇠고기 협상을 진행 중인 상황에서 한국의 요구를 수용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버시바우 대사는 그러나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입을 상당 기간 중단해 달라는 유 장관의 요청에 대해서는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실제로 유 장관은 이날 버시바우 대사를 만난 자리에서 '재협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는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 때문에 버시바우 대사의 이날 발언은 원론적인 차원에서 재협상이 불가능하다는 뜻이지,한국 정부가 요청한 일시적인 수입 유예까지 논의 대상으로 삼을 수 없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것이 통상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정인교 인하대 교수는 "양국이 외교 채널을 총동원해 물밑 협의를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버시바우 대사는 원론적인 수준의 언급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며 "결국은 미국도 한국의 정치적인 상황을 고려한 절충안을 내놓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 같은 상황을 감안할 때 수출국이 특정 상품의 수출 물량이나 가격 등을 자율적으로 제한하도록 수출입 양국이 협정을 맺는 자율규제협정(VRA)으로 한ㆍ미 양국이 돌파구를 마련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한쪽이 극도로 거부감을 갖고 있는 '재협상'보다는 사실상 재협상의 효과를 거둘 수 있는 해법을 내놓을 것이란 얘기다.

통상전문가들은 재협상이든 추가 협의든 자율규제협정이든 일단 한국 정부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만큼 미국을 설득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문한다.

서 연구위원은 "30개월 이상 쇠고기를 수출하지 않더라도 미국이 경제적으로 큰 손실을 보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설득해야 한다"면서 "지금 고시대로 수입되면 오히려 한국에서 미국산 쇠고기를 판매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점도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정 교수도 "정부가 그동안 해왔던 말을 완전히 뒤집고 사실상 재협상에 가까운 협의를 하겠다고 나선 만큼 행정부에만 맡겨서는 협상동력을 얻기 어렵다"면서 "국회 차원에서도 미국 의회 및 행정부와 접촉해 소통하고 설득하는 노력을 펼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류시훈 기자 bada@hankyung.com

[ 용어풀이 ]

◆자율규제협정(VRA)

수출국이 특정 상품의 수출물량이나 가격 등을 자율적으로 제한하도록 수출입 양국이 체결한 협정을 뜻한다.

1981년 일본이 미국과 맺은 자동차수출 자율규제협정(VRAㆍVoluntary Restraint Arrangement)이 대표적인 사례다.

한ㆍ미 간 협의에서는 미국이 알아서 30개월 이상 쇠고기는 한국에 수출하지 않기로 약속하는 것이다.

공식협상 결과를 뒤집지 않으면서 쇠고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현실적인 접점이라는 점에서 우리 정부가 상정하고 있는 최선책이다.

일종의 비관세장벽으로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에 위배된다는 지적도 있지만 통상전문가들은 당사국인 두 나라가 합의하고,이로 인해 피해를 입는 제3국이 없다면 문제될 것은 없다고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