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이 가지 않는 뒤안길에 꽃길이 있다"는 투자격언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몰리는 투자대상은 이미 가격이 충분히 올라 별 재미를 못보게 마련이지만 남들이 외면하는 곳은 상대적으로 저평가돼 있기 때문에 뜻밖의 대박을 터트릴 수 있다는 얘기다.

요즘 미분양아파트가 넘쳐나는 등 침체 일로인 부동산 시장에서 이처럼 '거꾸로' 전략을 구사해 고수익을 내는 투자고수가 있다.

한국투자증권 프로젝트금융본부장을 맡고 있는 김성환 상무(38)다.

김 상무는 지난해 부동산 금융부문에서 4조8500억원의 매출을 올려 300여억원의 순익을 거둬들였다.

덕분에 지난해 한국증권 임직원 중에서 가장 많은 성과급을 받아갔다.

한국증권에 합류한 지 불과 4년째지만 올초 상무로 선임되는 등 초고속 승진을 하고 있다.

김 상무의 전문 분야는 부동산 PF(프로젝트파이낸싱)업무다.

부동산PF는 아파트나 상가,공단 등을 개발할 때 필요한 자금을 시행사에 빌려주고 그 대가로 이자를 받는 투자방식이다.

증권사 부동산PF시장에서 한국증권의 점유율은 작년 말 기준 29%로 3년째 1위를 지키고 있다.

여기에 시중은행까지 포함하면 전체 부동산PF 시장 규모는 25조원대이며 한국증권의 비중은 18%에 이른다.

김 상무는 "부동산 경기가 나쁜데 부동산 금융을 통해 돈을 벌었다고 하면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들이 많다"며 "PF에 부동산 신규개발 외에도 자금난에 빠진 시공사에 자금을 대주는 리파이낸스(자금 보충) 같은 업무가 있다는 걸 일반인들은 잘 모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증권 입장에선 이처럼 많은 돈을 벌어다주는 김 상무가 '복덩이'지만 은행엔 '눈엣가시'같은 존재다.

"제가 증권사에서 PF업무를 처음 시작한 2001년에는 은행들이 PF시장을 독점하고 있었습니다.

증권사 내부적으로도 IB(투자은행)업무라고 하면 회사채 발행,증자,IPO(기업상장),M&A(기업인수.합병) 등만 거론할 뿐 '웬 부동산업무냐'라는 반응이었죠."

실제 은행에 PF는 매우 비중 있는 사업분야다.

요즘처럼 시중은행 금리를 넘는 투자수익을 내기 힘든 상황에서 PF에 참여하는 은행은 개발 후에도 시행사와 입주자 등을 대상으로 각종 대출 업무와 계좌 개설 등의 파생사업을 따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PF시장을 김 상무가 들어온 이후 증권업계에 절반 가까이 뺏겼으니 은행들이 김 상무를 달가워하지 않는 건 무리가 아니다.

김 상무는 2005년엔 증권업협회로부터 증권시장에 부동산금융 업무를 가져온 공로를 인정받고 공로패를 받기도 했다.

김 상무가 이처럼 '은행들의 리그'이던 부동산PF시장에서 선전한 건 PF에 ABS(자산유동화증권)라는 상품을 접목한 덕분이다.

ABS는 시행사로부터 받은 대출채권을 담보로 발행된 증권이다.

증권사는 PF ABS를 발행해 자사 영업점이나 기관투자가 등을 통해 팔아 자금을 마련하고 이 자금을 시행사에 빌려줘 부동산 개발을 지원한다.

즉 기존 PF가 은행 등 몇 개의 금융사들이 모여 자금을 빌려주는 방식을 채택해 자금 조달창구가 제한된데 반해 PF ABS는 불특정 다수의 개인투자자들을 참여시켜 많은 유동성을 손쉽게 공급받도록 하는 게 특징이다.

그러나 2005년 PF ABS가 시장을 50% 이상 잠식하자 규제책이 생겨났다.

투자자 보호를 위해 유가증권신고서를 제출해야 하는등 절차적인 요건이 더욱 까다로워진 것이다.

김 상무는 발빠르게 사모 성격을 강화시킨 ABCP(자산유동화어음)를 다시 선보여 불필요한 규제를 피해나갔고 지금처럼 승승장구하고 있다.

보험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는 증권사에서 일한 지 벌써 8년째지만 주식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체질적으로 위험이 있는 투자를 싫어합니다.

고수익을 위해 높은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면 거의 위험이 없으면서도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을 안겨주는 투자가 낫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실제 PF ABS와 PF ABCP는 연 7∼10%대 수익을 안겨줘 회사채 등 채권보다 수익률이 높지만 안전성도 뒤떨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훨씬 안전하다는 게 김 상무의 주장이다.

그는 "채권의 경우 회사가 부도나면 한순간 종이조각이 돼버리지만 이들 상품은 일단 토지를 담보로 잡는 데다 개발사업에서 발생하는 분양대금 등 현금이 들어오고 여기에 시공사가 보증하는 신용공여도 함께 잡는다"며 "게다가 채권은 BBB- 이상,어음의 경우 A3- 이상의 투자적격등급을 확보하지 않은 시공사는 거들떠보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개인투자자들도 투자자산의 일정 비율은 부동산 금융에 투자하는 게 투자의 정석이라고 김 상무는 조언했다.

그는 "보통 1000만원 이상의 자금이 있으면 증권사 영업점에서 ABS와 ABCP를 구매할 수 있다"며 "한 번 발을 들여놓은 고객은 원금이 깨지지 않는 데다 수익률도 높아 대부분 단골 투자자가 된다"고 귀띔했다.

부동산 경기는 이제 끝났다고 보는 최근 시각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김 상무는 "부동산은 의식주 중 하나라서 시장이 한꺼번에 사그러들 순 없다"며 "그보단 골프장 오피스텔 주상복합 등 그때그때 시대 조류에 맞춰 유행이 바뀌면서 가격도 번갈아 흐름을 타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따라서 "일반 투자자 입장에선 부동산 투자에 직접 나서기보단 부동산 금융을 통해 간접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안전하다"는 게 김 상무의 지론이다.

"개인 투자자가 직접 나서다 보면 유행을 몰라 실패할 가능성이 높지만 제대로 된 전문가가 미리 준비해 위험이 상쇄된 부동산 금융 상품을 선택하면 이런 위험을 기피하고 충분히 과실을 챙길 수 있습니다."

그는 내년 자본시장통합법 시행으로 증권사에 부동산신탁업이 허용되면 투자 수익률도 더욱 높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김 상무는 "현행법상으론 토지 담보를 취득할 때 은행이나 전업 신탁사에 부동산담보신탁을 맡기면서 수수료를 내야 했지만 내년부턴 증권사가 원스톱으로 직접 처리할 수 있게 됐다"며 "수수료 절감분만큼 수익률도 좋아져 개인 투자자들의 관심은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임상택 기자 lim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