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꽃 진 빈자리 받치듯

백목련 조금씩 벙글기 시작한다

옆집 가시찔레는 아직도 동면중이다

능소화 나들이 채비 서둘 유월이면

지나는 동네 아낙들 웃음꽃 다발다발

담장 넘어 던질 일만 남았다

봄 한 철 우리 집 정원은 행복놀이터다

지난해 입주한 금강초롱 매발톱도 꽃등을 내걸었다

늙은 석류나무 사춘기의 영산홍 모두

우리 집 우편번호를 달고 있다

그것들이 아무리 쿡쿡 향기로 찔러도

아프지 않다 새들이 떨구고 간 눈물도

여기 내려놓으면 꽃거름이 된다

우리 집 정원에 핀 꽃은 모두 우리 식구다

집배원 아저씨도 꽃 속에 숨어 있다

이광석 '우리집 꽃밭' 전문


자그마한 정원에 나른한 행복감이 출렁인다.

철따라 찾아오는 꽃 식구들 덕이다.

금강초롱 능소화 영산홍 가시찔레…이름만 들어도 정겨운 이들이 무심하게 향기를 토해낸다.

새들이 떨구고 간 눈물도 꽃거름이 되는 곳.변함없이 찾아드는 꽃 식구들이 없다면 어수선한 나날들이 얼마나 더 삭막할까.

아무리 바빠도 짬을 내서 ‘그래도 세상은 살만한 게 아니냐’는 꽃들의 속삭임을 들어 볼 것.

이정환 문화부장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