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형 사이클론 나르기스의 후폭풍으로 150만여명이 질병과 기아에 시달리는 등 미얀마에 '공중 보건 재앙'이 엄습하고 있다.

국제 사회는 구호활동은 뒷전으로 미룬 채 정권 연장을 위한 선거에만 열을 올리고 있는 미얀마 군사정부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국제 자선단체인 옥스팜의 사라 아일랜드 동아시아 대표는 "동물 배설물과 시체로 식수가 오염되는 등 질병과 기근이 150만명에 달하는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호 손길 막는 군부 권위주의

12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미얀마를 강타한 열대성 사이클론 나르기스로 10만명 이상이 숨지고 150만명의 이재민이 발생한 것으로 추산된다.

며칠째 음식을 먹지 못해 굶주림에 지친 이재민들의 얼굴은 공포에 질려 있고 젊은 엄마들은 아이를 품에 안은 채 구걸을 하고 있다고 AFP통신은 전했다.

하지만 구호의 손길은 아직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재민 구호가 어려움을 겪는 것은 미얀마 군사정부가 국제기구 등 외부 구호를 사실상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외국 원조와 구호 인력 유입이 자칫 군사정부의 무능함으로 비쳐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게다가 쌀 독점권을 가진 정부는 국민의 굶주림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최근 쌀값 폭등에 따른 수익을 챙기기 위해 쌀 수출을 강행하고 있다.

탄 슈웨 군정 최고지도자가 이끄는 군부는 지난 10일 나르기스로 피해를 당한 47개 마을을 제외하고 전국에서 예정대로 정권 연장을 위한 신헌법 찬반 국민투표를 강행했다.

AP통신은 투표 찬성률이 84.6%로 이미 정해져 있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고 전했다.


◆자원대국,그러나 세계 최빈국

미얀마는 성장 잠재력이 높은 신흥시장으로 평가받는다.

석유 천연가스 등 자원이 풍부한 데다 양질의 노동력과 인구 5000만명이 넘는 내수시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인도 중국 태국 등과 국경을 마주한 지정학적 위치도 미얀마의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이다.

더욱이 미얀마는 중국 베트남 등과 달리 1886~1962년 식민지배 아래 일찍이 영국식 시장경제를 경험하기도 했다.

1930년대엔 '아시아의 곡창'으로 발전하며 세계 제1의 쌀 수출국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1962년 군사 쿠데타 이후 지속된 군사정권과 그에 따른 정정 불안으로 경제가 뒷전에 밀리며 세계 최빈국으로 전락했다.

'88항쟁'으로 불리는 1988년 8월 민주화 시위로 쿠데타 주역인 네윈 장군이 하야하며 잠시 봄기운이 돌기도 했지만 다시 군부의 진압으로 좌절됐다.

1988년 쿠데타로 집권한 신군부는 나라 이름을 버마에서 미얀마로 바꾸고 20년간 외부 세계와 단절한 채 철권 통치를 해오고 있다.

지난해 8월 말 급격한 유가 인상으로 촉발된 시위가 전국적인 민주화 운동으로 번지면서 19년 만에 다시 '미얀마의 봄'이 일었지만 역시 군부 진압으로 미완에 그쳤다.

이런 정정 불안 속에 마이너스를 넘나드는 경제성장률과 최고 50%에 달하는 고물가로 국민들은 신음하고 있다.

외국인들도 발걸음을 돌렸다.

1999년부터 2002년까지 연 6%에 가까운 성장률을 기록하고 2005년 12%의 '반짝 성장'을 보이기도 했지만 이후 다시 제자리걸음에 그쳤다.

1955년만 해도 미얀마 태국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50~70달러로 비슷한 수준이었지만 현재 한국의 국민소득은 2만달러,태국은 3400달러를 웃도는 데 비해 미얀마는 180달러에 불과하다.

유병연 기자 yoob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