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것은 하얀 뭉게구름과 코발트빛 바다뿐.거친 물보라를 일으키며 배는 그렇게 두 시간을 달렸다.

세부를 떠난 지 1시간40분 남짓.흰 구름 사이로 녹색의 섬이 모습을 드러냈다.

필리핀의 숨은 진주,많이 알려지지 않아 여행자의 발끝을 더 자극하는 곳,보홀이다.

배에서 만난 마흔 살의 필리핀 여인도 이번이 첫 방문이라는 말에 타지의 여행자로서는 더 없이 뿌듯함을 느낀다.

제주도의 2배 크기인 이곳은 필리핀의 7000여개 섬 중에서도 10번째로 큰 섬이라고 한다.

야생과 휴양이 공존하는 섬 '보홀' 안엔 무엇이 숨어있을까.


■안경원숭이와 인사를

보홀 방문자들을 제일 먼저 반겨주는 것은 10㎝ 크기의 안경원숭이인 '타시르'.희귀 동물인 타시르의 서식지가 보홀의 로복강 주변에 펼쳐져 있다.

성격이 예민해 서식지를 옮기면 자살해 버린다는 타시르는 섬의 보호구역 안에서 앙증맞은 눈을 한 채 느긋한 휴식을 즐기고 있었다.

보홀 섬 내 총 200헥타르에 달하는 면적에 1000여마리가 살고 있다.

일반에 공개되는 타시르는 20마리 정도.숲이 우거진 보호구역을 필리핀 원주민 아저씨와 걷다보면 곳곳에 눈을 크게 뜬 채 나무에 매달린 타시르를 쉽게 볼 수 있다.

20년 내에 멸종될 확률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고 하니,타시르와 눈을 마주하고 있는 이 순간이 더없이 소중하다.

보홀에 가기로 결정했다면 이곳의 공식 홈페이지(www.philippinetarsier.org)를 꼭 들러볼 것.

■필리핀의 아마존,로복강 투어


로복강 유람을 하며 현지식 뷔페(1인당 300페소)를 즐겨보자.이 섬의 가장 큰 강 로복강은 야자숲과 에메랄드 빛 강물이 작은 아마존강을 보는 듯하다.

잔잔한 물살을 거스르고 있자니 우거진 원시림에 그대로 빨려들 것 같은 착각도 일으킨다.

야자수 열매 하나에 빨대를 꽂아 마시며 기타 소리에 흥얼거리는 사이 배는 로복강을 유유히 가로지른다.

21㎞의 강줄기를 따라 하늘을 찌를 듯한 야쟈수림이 지루해질 즈음엔 눈과 귀를 사로잡는 볼거리가 나타난다.

바로 보홀 섬의 아이들이다.

강 중간중간 떠 있는 배에는 어린이 악단이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며 한바탕 신나게 춤을 선보인다.

때마침 소나기가 퍼붓자 빗소리에 더 신난 듯 리듬이 한층 더 흥겨워진다.

자연에 감사하는 필리핀 사람들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순간이다.

아무 걱정없이 하루를 사는 이 아이들의 티 없는 눈망울에 빠져보자.1달러의 기부금이 아니라 그 어떤 것을 내주어도 아깝지 않다.

하나 더.로복강 투어 중 윗도리를 벗고 나무에 밧줄 하나 매단 타잔을 보더라도 놀라지 말 것.이곳 아이들이 살아가는 일상의 하나다.

■슬픈 사랑의 눈물자국,초콜릿 힐

보홀 섬 중앙엔 '거인의 눈물자국'이라고도 불리는 '초콜릿 힐'이 있다.

보홀에서 꼭 들러야 할 곳 중 하나다.

1268개의 크고 작은 언덕이 장관을 이룬다.

마호가니 나무와 야자수가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다.

이 중 가장 높은 전망대 언덕에 올라보자.해발 550m의 봉우리 꼭대기에 오르면 가슴이 탁트인 곳에서 자연의 위대함을 느낄 수 있다.

12~5월 사이엔 푸른색의 언덕이 짙은 초콜릿 갈색으로 서서히 변한다.

학자들은 고대 산호초가 융기해 풍화작용으로 생성된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옛날 한 거인이 약혼자가 있는 여인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몰래 데리고 숨었다는 전설을 믿는다.

그 여인이 거인을 피해 도망치자 슬픔에 잠긴 거인이 눈물을 흘려 떨어지면서 생겼다는 것.이 봉우리에 오르는 계단은 모두 214개다.

사랑을 고백하는 날인 2월14일을 기념해 놓았다고 하니,이렇게 로맨틱한 곳이 또 있을까.

■돌고래와 함께 아침을

이제 야생의 돌고래를 보러 떠날 시간.보홀 타그빌리란에서 30분 정도 다리를 건너면 팡라오섬에 닿는다.

보홀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섬으로 유명하다.

산호가루가 부서져 불면 날아갈 것 같은 화이트 비치에서 한가롭게 머물고 싶지만 놓치기 아까운 보홀섬의 이벤트가 있다.

바로 돌고래떼의 점핑.새벽 동이 틀 무렵 아침 6~8시 보홀 바다로 나가보자.돛이 달린 배를 타고 고요한 바다를 뚫고 40분가량 가다보면 돌고래가 쉭~쉭~ 소리를 내며 배 옆을 지난다.

행운이 따르면 수백마리의 돌래떼를 볼 수도 있다.

동화 속의 주인공이 된듯 뱃머리에 앉아 돌고래와 헤엄을 함께 즐겨보자.휘파람과 박수소리에 응답하는 듯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돌고래와 진한 교감을 느낄 수 있다.

돌고래떼와 아침을 맞이했다면 파밀라칸 섬에 배를 대고 잠시 쉬어가자.작은 섬마을 사람들의 푸근한 마을음식이 있다.

바로 앞 바다에서는 산호와 물고기떼를 눈앞에서 볼 수 있는 스노클링 구역도 있다.

필리핀(보홀)=글 사진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