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식품 유통업체인 홀푸드(Whole Foods)는 지난해 크리스마스 시즌 난감한 상황에 처했다.

새로 갖춘 계산 시스템이 말썽을 일으켜 고객들이 카운터에 장사진을 쳤다.

매장 총괄 매니저는 줄이 길어지자 결단을 내렸다.

매장 잘못으로 불편을 주고 시간을 빼앗았으니 구매한 물건들을 공짜로 가져가라고 안내했다.

이 매니저는 "내일 매장에 다시 와서 값을 치르겠다고 생각하는 고객들은 자선단체에 기부하라"고 덧붙였다.

이 일은 홀푸드에 전화위복이 됐다.

당시 매장에 있던 고객들이 여기 저기에 제보했고,주요 언론들은 일제히 홀푸드를 '고객과 지역사회를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기업'이라고 대서특필했다.

마케팅 전문가들은 "받지 않은 물건값 4000달러로 40만달러 이상의 홍보 효과를 거뒀다"고 평가했다.

마케팅 분야의 세계적 석학으로 꼽히는 라젠드라 시소디어 미국 벤틀리대학 교수는 8일 한국경제신문 가치혁신연구소가 서울 밀레니엄힐튼 호텔에서 주최한 조찬강연회에 참석,"홀푸드 사례는 '사랑받는 기업'이 되기 위해 회사를 어떻게 경영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케이스"라고 강조했다.


◆인터넷.고령화로 '좋은 기업' 기준도 변화


'사랑받는 기업'이란 단기적으로 수익을 끌어올리는 기업이 아니다.

고객과 직원,주주,협력사,지역사회 등 기업을 둘러싼 모든 이해 당사자들이 고루 이익을 얻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기업을 의미한다.

시소디어 교수는 구글 BMW 사우스웨스트항공 아마존 이베이 코스트코 할리데이비슨 홀푸드 등 28개사를 '사랑받는 기업'으로 분류했다.

이들의 최근 10년간 수익률은 평균 1100%.국제 신용평가 기관인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가 S&P500 지수를 산정하기 위해 정한 미국 500대 우량 기업의 평균보다 8배나 높다.

짐 콜린스 교수가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라는 저서에서 정의한 '위대한 기업'(성과,영향력,명성,지속성 등을 기준으로 뽑은 우량 기업)에 비해서도 3배가량 많은 이익을 남겼다.

시소디어 교수는 "사랑받는 기업의 목록을 확정한 다음 이 기업들의 최근 10년간 성과를 측정했다"며 "사랑받는 기업은 단기적으론 성과를 내지 못할 수 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이윤 추구에만 매달리는 기업보다 훨씬 높은 이익을 낸다"고 설명했다.

그는 사랑받는 기업이 등장한 이유로 인터넷과 인구 고령화를 들었다.

1990년 월드와이드웹(www) 등장 이후 대중들은 기업과 관련한 더 많은 정보를 갖게 됐다.

이들이 기업의 부정적인 정보에 집중하면서 '환경 파괴,장부 조작,스톡옵션 중시'로 요약되는 반기업 정서가 힘을 얻었다.

시소디어 교수는 기존 기업에 대한 반감이 '사랑받는 기업'이라는 대안을 만든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인구 고령화도 사랑받는 기업에 호재라는 분석이다.

나이 많은 소비자들은 어떤 기업이 자손들이 생활할 미래에 가족과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지를 숙고한 후 상품을 구매하는데,대부분 사랑받는 기업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주주이익 중심주의에서 벗어나라



시소디어 교수는 "사랑받는 기업이 되고 싶으면 'SPICE'를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SPICE'는 사회(society),협력업체(partner),투자자(investor),고객(customer),종업원(employee)을 의미한다.

그는 직원들부터 만족시킬 것을 주문했다.

미국의 '할인점 맞수'인 월마트와 코스트코를 사례로 들었다.

코스트코의 월급은 월마트의 두 배에 달한다.

얼핏 코스트코가 낭비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반대다.

월마트는 높은 이직률로 매년 직원들을 새로 뽑고 교육시키는 데 천문학적인 비용을 쏟아붓는다.

종업원 만족을 위해 스톡옵션 제도를 활용하는 사례로 홀푸드를 들었다.

그는 "홀푸드는 스톡옵션의 95%를 경영자나 고위 임원이 아닌 일반 직원에게 부여한다"며 "이런 정책이 직원들의 충성도를 높이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음 단계는 고객과 협력업체를 만족시키는 것이다.

시소디어 교수는 단기적으로 많은 이윤을 얻으려고 '소비자의 믿음'을 져버려선 안 된다고 주문했다.

코스트코는 의약품 마진율을 40%까지 높인 다른 할인점들과는 달리 20% 이내를 유지하고 있다.

이런 가격 정책으로 코스트코는 고객들로부터 강한 신뢰를 얻고 있다.

협력업체와 관련해선 "정보를 공유하고 협업의 비중을 늘리는 '상생 경영'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시소디어 교수는 사랑받는 기업이 되기 위한 마지막 단계로 사회를 꼽았다.

사회는 작게는 지역사회에서 크게는 지구촌을 모두 포괄하는 개념이다.

그는 "눈속임 마케팅은 한계가 있으며 '올바른 일'을 하는 기업이 결국 이기게 돼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환경문제 등 전 세계가 고민하고 있는 문제들을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