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금융 현장을 가다] (3) 기민전자 ‥ LG와 드림팀 이뤄 세계점령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지난달 29일 경북 구미에 있는 디지털TV용 '네트워크 박스' 제작업체 기민전자 본사.류상원 사장(48) 집무실에 들어가니 세계지도가 한 눈에 들어온다.
특이한 점은 다양한 색상의 딱지가 지도를 장식하고 있다는 것.미국에는 하얀색,유럽에는 노랑색,러시아 중남미 지역엔 빨강색 딱지가 붙어 있다.
"하얀색은 어느 정도 시장을 '평정'했다는 표시입니다.
노랑색은 '전투중'이란 의미이고,빨강색은 곧 진출할 계획이란 뜻이죠.머지않아 노랑색,빨강색 딱지들도 모두 하얀색으로 바뀔 겁니다."
지방 중소기업을 이끄는 류 사장이 이처럼 "세계를 평정하겠다"고 자신하는 것은 바로 경쟁업체를 압도하는 기술력 때문이다.
디지털TV용 네트워크 박스란 소비자가 TV를 통해 VOD(주문형비디오),맞춤형 쇼핑 등 원하는 콘텐츠를 HD급 화질로 실시간 볼 수 있도록 해주는 장치. 다수의 소비자와 넓은 지역을 대상으로 하는 메가TV 등 IP TV(인터넷TV)와는 달리 호텔 병원 기업 등 제한된 공간과 고객을 상대로 하는만큼 '맞춤형 콘텐츠'를 구성할 수 있다.
내부 인트라넷을 이용해 해킹을 당하거나 컴퓨터 바이러스에 걸릴 위험이 적다는 것도 장점이다.
류 사장은 "세계 최초로 디지털TV용 네트워크 박스를 내놓은 지 3년이 지났지만 여태껏 경쟁 제품은 나오지 않았다"며 "일본 소니와 샤프 등도 개발에 나섰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아직 제품화는 안됐다"고 말했다.
글로벌 기업도 개발하지 못한 제품을 기민전자가 만들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
류 사장은 기술 개발 및 마케팅에 도움을 준 LG전자와 자금난에 허덕일 때마다 대출 보증을 서준 기술보증기금을 일등공신으로 손꼽았다.
기민전자와 LG전자와의 인연은 류 사장이 LG전자 연구원으로 입사한 198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류 사장은 2001년 기민전자를 설립한 뒤에도 LG전자의 TV 개발을 도왔다.
이 과정에서 네트워크 박스 개발 노하우를 터득했고 2004년 시제품 생산에 성공했다.
류 사장은 이듬해 중소기업진흥공단 등의 지원을 받아 네트워크 박스를 양산할 수 있는 공장 설립에 나섰지만 어렵기 짝이 없었다.
제품이 양산되지 않은 탓에 수입은 시원치 않은 반면 자재대금과 급여는 꼬박꼬박 나가는 상황이었다.
기술외에는 가진 것이 없는 류 사장이 찾아갈 곳은 기술보증기금 뿐이었다.
'내 기술을 남들도 인정해줄까'라는 류 사장의 우려는 기보 담당자를 만나면서 풀렸다.
"당장 돈이 급한 것 같으니 첨부 서류 등 부가적인 자료는 나중에 제출하라.보증은 걱정말고 사업에만 전념하라"는 답변이 돌아온 것.류 사장은 보증료를 포함해 연 6%대 금리로 3억원을 2005년 대출받아 급한 불을 껐다.
당시 기보 구미기술평가센터 지점장이었던 박대연 홍보팀장은 "기술은 물론 사업성도 뛰어난 것으로 평가돼 보증을 서주는데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고 회상했다.
기민전자가 기보와 두번째 인연을 맺은 때 첫번째 대출을 받은지 1년쯤 지나서였다.
LG전자를 비롯한 전자 부문 대기업들은 정부가 주도한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정책에 따라 기보에 65억원을 출연했고,기보는 이를 재원으로 중소기업에 716억원을 보증해주었다.
물론 기민전자는 LG전자의 추천을 받아 17억원을 지원받았다.
류 사장은 "LG전자와 기보 덕분에 연 4.5% 저리로 거액을 빌려 기술개발과 제품 양산에 박차를 가할 수 있었다"며 "세계 시장 공략을 꿈꿀 수 있게 된 초석도 이 때 마련됐다"고 밝혔다.
법인 전환 첫해 62억원에 그쳤던 기민전자의 매출은 이듬해 221억원으로 뛰었고,지난해에는 369억원으로 불어났다.
올해 목표는 1000억원.3년 뒤엔 매출 5000억원에 도전할 계획이다.
기민전자는 LG전자에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잘 키운 중소기업' 덕분에 상당량의 디지털 TV를 추가로 수출하고 있어서다.
기민전자의 네트워크 박스는 LG전자의 디지털TV와 한 팀을 이뤄 힐튼 매리어트 등 미국내 고급 호텔에 들어가고 있다.
미국 5성급 호텔의 40% 가량이 '기민전자-LG전자' 커플의 고객이다.
경쟁 제품이 없어 미국 전역은 물론 유럽 중남미 중동 등의 고급 호텔들도 고객이 될 것으로 류 사장은 기대하고 있다.
이동석 구미기술평가센터 지점장은 "'LG전자-기민전자'의 파트너십은 대.중소기업 상생경영이 낳은 대표적인 윈-윈 사례"라며 "대.중소기업 상생정책에 따라 앞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제2의 기민전자'가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구미=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