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달러화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내 은행들이 달러를 찾아 전 세계 곳곳을 뒤지고 있다.

미국이나 유로 시장에 비해 조금이라도 조달 여건이 양호한 곳이 있다면 선진국이든 개발도상국이든 가리지 않고 있다.

말레이시아 스위스 멕시코는 물론 예전에는 쳐다보지도 않던 태국 터키 남아공 캐나다 호주 등지도 살펴보고 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시장 규모가 작은 변두리 국가에서 외국 돈을 빌리다보니 금액이 적고 대출기간이 짧아 '언 발에 오줌 누기'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주요 거래선인 미국과 유럽 시장이 서브프라임 사태 이후 신용경색으로 위축된 것에 비하면 신규 개척시장에서 조달하는 외화 규모가 너무 작다는 것이다.

때문에 국내 기업들의 외화자금 조달이 여전히 어렵고 외화금리도 높게 유지되는 등 그 효과가 매우 제한적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시장이 된다고 하면 모두가 한꺼번에 몰려나가는 한국 금융회사들의 '떼거리 행동'도 외화조달 조건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비판의 이유가 되고 있다.

27일 금융계에 따르면 수출입은행은 최근 일본시장에서 조달여건이 나빠지자 사무라이본드 발행을 연기한 이후 싱가포르 호주 태국 등의 금융시장을 살펴보고 있다.

수은 관계자는 "미국 서브프라임 사태 이후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달러 기근이 심화되고 있으나 일부 시장의 경우 잠깐이나마 여건이 개선되는 경우가 있다"며 "이 같은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여러 시장을 체크하며 즉각이라도 기채할 준비를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경우가 멕시코 시장이다.

수은은 실제로 지난주 8억멕시코페소의 채권을 발행해 7600만달러에 해당하는 외화자금을 확보했다.

10년 고정금리인 이 채권의 가산금리는 달러 스와프 비용을 포함하더라도 리보(런던 은행간 금리)에 1.35%포인트를 더한 수준이다.

수은은 미국이나 유로시장에서 이 정도의 돈을 조달할 경우 가산금리를 0.2%포인트 이상 부담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산업은행 역시 예전에는 눈독을 들이지 않았던 색다른 시장을 연구하고 있다.

산은 관계자는 "호주 캐나다 남아공 터키 브라질 등도 관심대상 지역으로 분류해 상황을 살펴보고 있다"며 "발행금리와 달러 스와프 비용을 합친 총 조달비용을 시장별로 따진 후 미국 유로 일본 등 3대 시장보다 낫다고 생각하면 즉각 발행에 나설 것"이라고 전했다.

산은은 지난 14일 3억달러 규모의 스위스프랑화 채권을 발행했다.

스위스 시장은 국내 금융회사들이 2006년까지 조금씩 이용했으나 최근 들어선 규모가 작아 사실상 외면했던 시장이다.

은행들은 또 틈새시장의 작은 틈을 순간적으로 파고 들기 위해 과거와는 다른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해외채권 발행규모는 줄이고 기간은 단축하는 것이다.

수은이나 산은의 경우 지난해 상반기까지만 하더라도 5년물,10년물 중심으로 5억~15억달러를 들여왔으나,이제 5년만기 이하를 1억달러 미만에서 들여오기도 하고 있다.

문제는 국내 은행들의 과당경쟁이다.

한 은행이 신시장을 개척했다고 하면 너도나도 따라나가는 쏠림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 때문에 말레이시아 시장에서의 조달비용이 치솟고,일본 시장에서 사무라이본드 발행 여건이 악화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박준동 기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