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있는 갤러리] 고영조 '하지정맥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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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하지정맥류를 앓고 있다 푸른 지렁이들이 종아리를 퍼렇게 감고 있다 그는 너무 오래 서 있었다 무너지지 않으려고 풀썩 주저앉지 않으려고 바위틈에 뿌리를 깊게 박고 서 있었다 너무 오래 서 있었다고 몸이 일러준 것이다 일전에 갔던 무량수전 배흘림기둥도 둥근 몸이 군데군데 깨어져 있었다 그도 무거운 지붕을 이고 너무 오래 서 있었다 한 손에 약병을 들고 계신 약사여래께서도 그러하셨다 치맛자락으로 푸른 종아리를 감추시던 어머니도 그러하셨다 떠나신 지 30년이 지났어도 커다란 함지박을 이고 아직도 대문간에 서 계셨다 어머니는 언제나 서 계셨다 푸른 지렁이들이 종아리를 퍼렇게 감을 때까지 그들은 너무 오래 서 있었다
고영조 '하지정맥류'전문
삶이 너무 무거웠다.
아내로서,어머니로서 그토록 힘겹게 살아왔다.
대신해 줄 사람도, 피해갈 곳도 없었다.
아파서도 안됐다.
무거운 지붕을 이고 있는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처럼 삶의 무게를 고스란히 지탱하며 언제나 서 있어야 했다.
하찮으면서도 위대한일상(日常)을 지키기위해 너무 오래 서 있었다.
이정환 문화부장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