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량 파동의 '소리 없는 쓰나미'가 미국으로 번졌다.

쌀값 상승을 우려한 미국 내 일부 소비자들이 사재기에 나서자 월마트나 코스트코 등 대형 마트(할인점)들이 쌀 판매를 제한하기 시작한 것이다.

쌀값 고공행진이 계속되면서 각국은 해외 농업투자와 식품안정기금 조성 등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월마트 계열의 회원제 창고형 마트인 샘스클럽은 23일 최근 수급 추세를 감안해 재스민 쌀,바스마티 쌀,장백미(長白米) 등 수입쌀의 판매량을 1인당 4포대(9㎏짜리)로 제한한다고 밝혔다.

샘스클럽과 함께 세계 2대 회원제 할인점인 코스트코도 일부 매장에서 쌀과 밀가루의 대량판매를 제한했다.

경쟁 할인점인 BJ홀세일클럽도 시장 현황에 따라 쌀 판매량 제한을 고려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대형 마트들의 이 같은 조치는 최근 곡물값 급등으로 쌀 사재기가 광범위하게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캘리포니아 식품상협회의 데이브 헤일런 대변인은 "식당이나 잡화점에서 식량가격 추가 상승을 우려해 대량으로 쌀을 사재기하는 현상이 벌어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AP통신은 소규모 식료품점들도 대형 할인점을 따라 쌀 판매량을 제한하며 수급 문제에 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쌀값 급등에 따라 홍콩 마카오 필리핀 태국 등지에서도 사재기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실정이다.

뉴욕 차이나타운에서 판매하는 쌀 가격은 지난 한 달간 25파운드(약 11㎏)짜리 포대 기준으로 15달러에서 20달러로 올랐다.

이날 시카고상품거래소(CBOT)에서 7월 인도분 쌀 가격은 장중 최고치인 100파운드당 24.85달러까지 상승한 뒤 24.82달러로 거래를 마감했다.

시간외거래에서는 사상 최고치인 25.01달러까지 치솟았다.

식량가격 상승세가 장기화하자 각국은 대응책 마련에 서두르고 있다.

베네수엘라 쿠바 볼리비아 니카라과 등 중남미 좌파 4개국은 이날 정상회담을 갖고 1억달러 규모의 식품안정기금을 조성해 식료품 가격 폭등에 공동 대처하기로 합의했다.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최근의 식량 위기는 자본주의 모델의 역사적 실패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라며 "농업기술 협력과 유통체계 정비를 통해 중간상과 투기꾼으로부터 농락당하는 사태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부 국가는 해외 농업투자로 살 길을 찾고 있다.

특히 러시아 연해주 등 인력과 장비,시설 부족으로 방치돼온 농지들이 각광받고 있다.

남한 전체 경작지의 4배에 달하는 연해주 한카 평원과 우수리 평원에는 남양알로에 등 한국 기업들의 진출이 잇따르고 있다.

임대료가 ㏊당 연간 30~70달러 수준으로 저렴한 것이 가장 큰 장점이라는 설명이다.

중국과 뉴질랜드 자본도 농지 확보 경쟁에 가세했다.

유럽에선 곡물값 급등 여파로 농지 가격이 급등했다.

일본과 유럽연합(EU)은 세계무역기구(WTO)에 식량 위기를 가속화할 수 있는 식량수출 통제를 막아줄 것을 촉구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의 자크 디우프 총장은 "선진국들이 자국 농업 보호를 위해 유지해온 농업 보조금 제도가 개발도상국들의 농업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고 비판했다.

FAO는 식량위기 타개를 위한 최우선 정책과제는 올해 농산물 작황을 최대로 끌어올리는 것이라며 선진국의 지원을 요구했다.

김유미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