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오전 11시5분 서울 태평로 삼성본관 국제회의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00여명의 내외신 기자로 가득찬 기자회견장에 들어서 '퇴진'을 직접 발표하자 현장에서 이를 지켜보던 임직원들 사이에 장탄식이 흘러나왔다.

이 회장은 '국민에게 드리는 말씀'이라는 제목의 대국민 사과문을 3분여에 걸쳐 결연한 표정으로 읽어 내려갔다.

"20년 전 초일류 기업으로 인정받는 날 모든 영광과 결실은 여러분의 것이라고 약속했습니다.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되어 정말 미안합니다"라는 부분을 이 회장이 읽어나가자 일부 직원은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이 회장은 성명 낭독 후 "감사합니다"라고 말한 뒤 곧바로 국제회의장을 빠져나갔다.

인공위성으로 전국 사업장에 생중계된 방송을 지켜본 18만여 삼성 임직원들은 '설마'했던 이 회장의 퇴진이 공식 발표되자 당혹감과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대다수 직원들은 일손을 잡지 못하고 술렁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쇄신안 발표 후 점심시간에 삼성 본관 뒤편의 공원에는 보슬비가 내리는 가운데서도 어두운 표정의 직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그룹의 앞날을 걱정했다.

"20년 동안 삼성을 이끌며 일등 기업으로 키운 이 회장이 이렇게 물러나는 것이 못내 안타깝다"는 울분에 가까운 토로를 내뱉는 직원도 있었다.

경영쇄신책에 따라 50여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 전략기획실 직원들은 말을 붙이기 힘들 정도로 침울한 모습을 보였다.

한 관계자는 "회장님이 물러나는 마당에 무슨 심경을 밝히겠느냐"며 답답해했다.

예상치 않게 사령탑을 잃게 된 삼성증권 임직원들의 표정도 무거웠다.

배호원 사장이 차명계좌 수사 등과 관련해 법적 책임은 없지만 도의적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직원들이 적지 않게 동요했다.

한 직원은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라 당혹스럽다. 회사를 크게 키워낸 주역인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김현예 기자 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