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가 산업은행과 기업은행의 정책금융 기능을 분리해 각각 매력적인 매물로 만든 후,합쳐서 팔지 또는 따로 팔지 등의 판단은 매각 때 시장 상황에 따라 결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일단 매물이 될 수 있도록 신속하게 정책금융 기능을 떼어 놓은 뒤 매각 조합은 시장에서의 평가와 원매자의 요구를 토대로 시장과 교감해 가면서 결정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14일 밝혔다.

다시 말해 메가뱅크로 갈지,개별 매각을 할지,아니면 일부만 합쳐 매각할지는 추후에 결정한다는 얘기다.


◆매각 조합,시장 평가에 맡긴다

금융위와 기획재정부가 충돌한 부분은 산은 기은 우리금융 등 3개 정부 소유 금융회사의 매각 조합을 어떻게 짤 것인가였다.

금융위는 개별 매각하는 '산은 지주회사 안'이,재정부는 통합 매각하는 '메가뱅크 안'이 매각에 유리하다고 주장했다.

금융위는 이 부분을 피해 가기로 한 것이다.

어떤 방법이 제값을 받으면서도 빨리 매각할 수 있는지는 시장이 평가할 수 있는 만큼 매각 때 시장의 반응을 보고 판단하자는 것이다.

내년부터 산은 지주회사 매각에 들어가는 과정에서 시장의 요구에 따라 산은+기은+우리금융으로 팔릴 수도 있고,개별 매각이 될 수도 있다.

또 산은은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시켜 개별 매각하는 동시에 기은과 우리금융을 묶어 팔고,산은과 기은을 묶어 파는 한편 우리금융은 별도로 매각하는 방법 등 선별적인 통합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금융위 고위 관계자는 "대형화를 우선 추구하는 것보다는 빨리 민영화할 수 있도록 매물로 만드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민영화 과정에서 세 개를 합쳐 팔 수도 있고,기존 시중은행들이 산은 기은 등을 개별적으로 인수.합병(M&A)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민영화 과정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대형화가 이뤄질 것이라는 설명이다.

금융위는 산은 지주회사에 대해 국제 경쟁력을 갖춘 최고경영자(CEO)를 선임하고 독자적인 경영이 가능하도록 권한과 책임을 부여하는 등 기업 가치를 높이는 방안도 추진할 예정이다.

정부는 또 산은 기은의 정책금융 기능,신용보증기금 기술신용보증기금의 보증체계,중소기업 진흥 및 산업기반 기금과 모태조합 등의 기능이 중복.과잉되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중소기업 지원 체계를 전면적으로 재편할 계획이다.

중소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산은 매각 자금으로 조성한다는 한국투자펀드(KIF) 모델도 이 같은 구도에서 검토하기로 했다.

◆일단 피하고 보자?

재정부가 금융위의 이 같은 방안을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금융위는 대형화보다는 신속한 민영화에 더 무게를 두고 있고,재정부는 대형화를 통한 금융산업 경쟁력 강화에 중점을 두고 있어서다.

재정부 관계자는 "막연히 시장의 평가에 따른다지만 지분을 얼마나 우선 매각할지,합친다면 어떤 방식으로 할지 등 구체적인 안을 만들려고 하면 복잡한 문제가 생길 것"이라며 판단을 유보했다.

금융위의 이 같은 안에 대해서는 단순히 정책결정 시기만 늦추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위가 재정부의 압박을 피해가기 위해 '시장을 통해 결정한다'는 아이디어를 내놓고 시간을 벌겠다는 생각이 아니냐는 것이다.

정재형 기자 j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