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이슈 분석] 세계 휩쓰는 물가 급등 쓰나미…인플레 공포에 지구촌이 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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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디락스'가고 식량폭동 위기
#장면 1
"논에서 멀리 떨어질 수가 없습니다.
개가 짖기라도 하면 바로 달려가 별일이 없는지 살피죠." 태국의 농민 타캄 우타오씨(48)는 하루종일 신경이 곤두서 있다.
논에서 '벼 서리'를 하는 사람들 때문이다.
쌀값이 지난 한 달 새 52% 급등하자 굶주린 사람들이 도둑질에 나선 것이다.
생전 범죄로 고민해본 적 없던 농민들은 이제 방위대를 꾸려 밤낮 논을 '사수'한다.
타캄씨는 "쌀값이 올라도 즐거울 게 없다"며 "씨앗부터 비료,기름값 모두 치솟아서 호주머니는 여전히 텅텅 비어 있다"고 투덜댔다.
#장면 2
지난 8일 카리브해 소국 아이티의 수도 포르토프랭스.수백 명의 성난 군중이 대통령궁 정문을 부수며 진입을 시도했다.
시내 곳곳에서 콘크리트 바리케이드와 타다 남은 차량들이 도로를 막았고,평화유지군이 쏜 최루탄 냄새가 진동했다.
시위 진압 과정에서 사망자도 속출했다.
시민들을 거리로 내몬 것은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아니었다.
원인은 물가 폭등.2007년 중반 이후 식료품 가격은 평균 40%나 치솟았다.
아이티 상원은 이에 대한 책임을 물어 자크 에두아르 알렉시스 총리를 해임하기로 했다.
세계 경제에 인플레이션 공포가 드리우고 있다.
미국 유럽과 개도국의 물가상승률은 10년여 만에 최고치를 갈아치우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올해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 소비자물가는 2.6% 상승,1995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할 전망이다.
개도국 물가상승률은 지난 2월 6.5%를 나타냈다.
곡물가가 급등하자 필리핀 인도네시아 이집트 짐바브웨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지구촌 전 대륙에 걸쳐 '식량 폭동'이 확산되고 있다.
전문가들도 잇따라 인플레 경고를 내놓고 있다.
도미니크 스트로스 칸 IMF 총재는 "곡물 가격이 지금처럼 오르면 그 결과는 끔찍할 것"이라며 "수십만 명이 굶어 죽고 경제 환경이 와해돼 지난 5~10년간의 성과가 완전히 파괴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원자재 가격 상승과 약달러가 주범
세계적인 인플레이션 폭풍의 배경에는 치솟는 원자재 가격이 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국제 식품 가격은 지난 3년 새 83% 급등했다.
중국과 인도 등 개도국 수요가 폭발하면서 쌀값은 최근 1년간 147% 치솟았다.
중국인이 많이 먹는 돼지고기 가격은 지난해 이후 60% 뛰었다.
올 들어 100달러 선을 깨뜨린 국제유가는 지난주 배럴당 112달러를 넘어섰다.
대체연료 수요가 높아지자 바이오 연료 원료로 사용되는 옥수수값은 올해만 15번 최고치를 경신했다.
달러 가치 하락도 인플레의 주원인이다.
달러 자산에서 빠져나온 투자자금이 상품시장에 몰리면서 원자재 가격 상승세를 부채질하고 있다.
약달러로 직격탄을 맞은 곳은 달러 페그제를 채택한 국가들.미 달러에 자국 통화 가치를 연동시키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와 홍콩 몽골 등은 미국이 신용위기 타개를 위해 기준금리를 낮출 때마다 물가 상승 압력을 받고 있다.
개도국 임금이 가파르게 뛴 것도 물가 상승을 부채질하고 있다.
중국 상하이시는 이달부터 근로자들의 월 최저임금을 840위안(11만7600원)에서 960위안으로 14.3% 올렸다.
1993년 최저임금제를 실시한 이후 가장 큰 인상폭이다.
프랑스의 크리스티앙 노이어 중앙은행 총재는 "세계화에 따른 개도국의 저임금이 인플레를 막는다는 '중국 효과'의 약발이 장기적으로 떨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곡물과 석유값이 동반 파동 조짐을 보이면서 하이퍼 인플레이션(hyper-inflation·초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마저 나온다.
2005년 국제유가 배럴당 100달러 시대를 예견했던 골드만삭스는 "중대한 공급 불안이 발생할 경우 유가는 올해 200달러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세계은행도 "곡물가 급등세는 2015년까지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우리에게 빵을 달라'…사회 불안 가중
소비 중 식비 비중이 높은 개도국에서 먼저 신음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지난 2월 중국의 소비자물가는 8.7% 뛰어 11년 새 최고치를 기록했고,베트남은 올해 물가상승률이 지난해의 두 배인 18%에 이를 전망이다.
스리랑카는 3월 물가상승률이 통계 작성 이래 최고치인 28.1%를 나타냈다.
IMF는 올해 이머징 국가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2001년 이래 가장 높은 평균 7.4%로 예상했다.
이에 따라 각국에서는 임금이나 보조금 인상이 뜨거운 쟁점으로 떠올랐다.
지난 주말 유럽 중앙은행 총재들이 모인 슬로베니아에서는 전 대륙에서 1만여명의 근로자들이 몰려와 임금 인상을 외쳤다.
최근 독일에서는 200만여명의 공공 부문 근로자 임금을 8% 올리기로 했다.
16년 만의 최대 인상폭이다.
10년 전 유가 급등에 따른 시위로 수하르토 대통령이 물러난 바 있는 인도네시아 정부는 내년 선거를 앞두고 유류 보조금을 더 이상 삭감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인도네시아 이집트 아이티 남아공 예멘 등에서는 임금 인상과 식량 문제 해결을 외치는 시위가 격화하고 있다.
이집트 카이로 인근에서는 지난주 수천 명의 주민들이 물가 폭등에 반발,시위를 벌이다가 경찰과 충돌해 2명이 사망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최소 33개국에서 식량 가격 급등으로 인해 폭동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경고문을 발표했다.
◆저무는 저물가 고성장 시대
글로벌 인플레가 현실화하자 안정된 물가를 기반으로 고성장을 이뤄온 '골디락스(Goldilocks)' 시대가 끝났다는 분석이 잇따른다.
1990년대 이후 저금리 기조를 유지하며 경기 부양에 중점을 둬왔던 국가들은 브레이크를 밟기 시작했다.
인도는 최근 물가상승률이 중앙은행의 목표치(5%)를 상회하자 고금리 정책으로 돌아섰다.
JP모건체이스는 이에 따른 성장 둔화로 인도의 올해 성장률이 지난해의 9.6%보다 낮은 7~7.5%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중국 호주 콜롬비아 헝가리 폴란드 러시아 남아공 태국 등의 중앙은행도 최근 금리를 올렸다.
신용위기를 겪고 있는 미국은 약달러로 수입 물가가 오르는 등 인플레 압력이 커지고 있지만 경기침체 우려 때문에 고금리 카드를 쓰기 어렵다.
자칫 경기침체 속에 물가가 상승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을 부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미 신용경색 여파에 시달리는 유럽도 고민이 깊다.
유로존 15개국의 2월 물가는 10년 새 최고치인 3.5%에 달했다.
유럽중앙은행은 인플레 완화를 위해 지난주 기준금리를 10개월째 4%로 동결했지만 미 경기침체 파장이 커질 경우 운신 폭은 더 좁아질 전망이다.
김유미/유병연 기자 warmfront@hankyung.com
"논에서 멀리 떨어질 수가 없습니다.
개가 짖기라도 하면 바로 달려가 별일이 없는지 살피죠." 태국의 농민 타캄 우타오씨(48)는 하루종일 신경이 곤두서 있다.
논에서 '벼 서리'를 하는 사람들 때문이다.
쌀값이 지난 한 달 새 52% 급등하자 굶주린 사람들이 도둑질에 나선 것이다.
생전 범죄로 고민해본 적 없던 농민들은 이제 방위대를 꾸려 밤낮 논을 '사수'한다.
타캄씨는 "쌀값이 올라도 즐거울 게 없다"며 "씨앗부터 비료,기름값 모두 치솟아서 호주머니는 여전히 텅텅 비어 있다"고 투덜댔다.
#장면 2
지난 8일 카리브해 소국 아이티의 수도 포르토프랭스.수백 명의 성난 군중이 대통령궁 정문을 부수며 진입을 시도했다.
시내 곳곳에서 콘크리트 바리케이드와 타다 남은 차량들이 도로를 막았고,평화유지군이 쏜 최루탄 냄새가 진동했다.
시위 진압 과정에서 사망자도 속출했다.
시민들을 거리로 내몬 것은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아니었다.
원인은 물가 폭등.2007년 중반 이후 식료품 가격은 평균 40%나 치솟았다.
아이티 상원은 이에 대한 책임을 물어 자크 에두아르 알렉시스 총리를 해임하기로 했다.
세계 경제에 인플레이션 공포가 드리우고 있다.
미국 유럽과 개도국의 물가상승률은 10년여 만에 최고치를 갈아치우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올해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 소비자물가는 2.6% 상승,1995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할 전망이다.
개도국 물가상승률은 지난 2월 6.5%를 나타냈다.
곡물가가 급등하자 필리핀 인도네시아 이집트 짐바브웨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지구촌 전 대륙에 걸쳐 '식량 폭동'이 확산되고 있다.
전문가들도 잇따라 인플레 경고를 내놓고 있다.
도미니크 스트로스 칸 IMF 총재는 "곡물 가격이 지금처럼 오르면 그 결과는 끔찍할 것"이라며 "수십만 명이 굶어 죽고 경제 환경이 와해돼 지난 5~10년간의 성과가 완전히 파괴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원자재 가격 상승과 약달러가 주범
세계적인 인플레이션 폭풍의 배경에는 치솟는 원자재 가격이 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국제 식품 가격은 지난 3년 새 83% 급등했다.
중국과 인도 등 개도국 수요가 폭발하면서 쌀값은 최근 1년간 147% 치솟았다.
중국인이 많이 먹는 돼지고기 가격은 지난해 이후 60% 뛰었다.
올 들어 100달러 선을 깨뜨린 국제유가는 지난주 배럴당 112달러를 넘어섰다.
대체연료 수요가 높아지자 바이오 연료 원료로 사용되는 옥수수값은 올해만 15번 최고치를 경신했다.
달러 가치 하락도 인플레의 주원인이다.
달러 자산에서 빠져나온 투자자금이 상품시장에 몰리면서 원자재 가격 상승세를 부채질하고 있다.
약달러로 직격탄을 맞은 곳은 달러 페그제를 채택한 국가들.미 달러에 자국 통화 가치를 연동시키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와 홍콩 몽골 등은 미국이 신용위기 타개를 위해 기준금리를 낮출 때마다 물가 상승 압력을 받고 있다.
개도국 임금이 가파르게 뛴 것도 물가 상승을 부채질하고 있다.
중국 상하이시는 이달부터 근로자들의 월 최저임금을 840위안(11만7600원)에서 960위안으로 14.3% 올렸다.
1993년 최저임금제를 실시한 이후 가장 큰 인상폭이다.
프랑스의 크리스티앙 노이어 중앙은행 총재는 "세계화에 따른 개도국의 저임금이 인플레를 막는다는 '중국 효과'의 약발이 장기적으로 떨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곡물과 석유값이 동반 파동 조짐을 보이면서 하이퍼 인플레이션(hyper-inflation·초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마저 나온다.
2005년 국제유가 배럴당 100달러 시대를 예견했던 골드만삭스는 "중대한 공급 불안이 발생할 경우 유가는 올해 200달러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세계은행도 "곡물가 급등세는 2015년까지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우리에게 빵을 달라'…사회 불안 가중
소비 중 식비 비중이 높은 개도국에서 먼저 신음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지난 2월 중국의 소비자물가는 8.7% 뛰어 11년 새 최고치를 기록했고,베트남은 올해 물가상승률이 지난해의 두 배인 18%에 이를 전망이다.
스리랑카는 3월 물가상승률이 통계 작성 이래 최고치인 28.1%를 나타냈다.
IMF는 올해 이머징 국가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2001년 이래 가장 높은 평균 7.4%로 예상했다.
이에 따라 각국에서는 임금이나 보조금 인상이 뜨거운 쟁점으로 떠올랐다.
지난 주말 유럽 중앙은행 총재들이 모인 슬로베니아에서는 전 대륙에서 1만여명의 근로자들이 몰려와 임금 인상을 외쳤다.
최근 독일에서는 200만여명의 공공 부문 근로자 임금을 8% 올리기로 했다.
16년 만의 최대 인상폭이다.
10년 전 유가 급등에 따른 시위로 수하르토 대통령이 물러난 바 있는 인도네시아 정부는 내년 선거를 앞두고 유류 보조금을 더 이상 삭감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인도네시아 이집트 아이티 남아공 예멘 등에서는 임금 인상과 식량 문제 해결을 외치는 시위가 격화하고 있다.
이집트 카이로 인근에서는 지난주 수천 명의 주민들이 물가 폭등에 반발,시위를 벌이다가 경찰과 충돌해 2명이 사망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최소 33개국에서 식량 가격 급등으로 인해 폭동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경고문을 발표했다.
◆저무는 저물가 고성장 시대
글로벌 인플레가 현실화하자 안정된 물가를 기반으로 고성장을 이뤄온 '골디락스(Goldilocks)' 시대가 끝났다는 분석이 잇따른다.
1990년대 이후 저금리 기조를 유지하며 경기 부양에 중점을 둬왔던 국가들은 브레이크를 밟기 시작했다.
인도는 최근 물가상승률이 중앙은행의 목표치(5%)를 상회하자 고금리 정책으로 돌아섰다.
JP모건체이스는 이에 따른 성장 둔화로 인도의 올해 성장률이 지난해의 9.6%보다 낮은 7~7.5%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중국 호주 콜롬비아 헝가리 폴란드 러시아 남아공 태국 등의 중앙은행도 최근 금리를 올렸다.
신용위기를 겪고 있는 미국은 약달러로 수입 물가가 오르는 등 인플레 압력이 커지고 있지만 경기침체 우려 때문에 고금리 카드를 쓰기 어렵다.
자칫 경기침체 속에 물가가 상승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을 부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미 신용경색 여파에 시달리는 유럽도 고민이 깊다.
유로존 15개국의 2월 물가는 10년 새 최고치인 3.5%에 달했다.
유럽중앙은행은 인플레 완화를 위해 지난주 기준금리를 10개월째 4%로 동결했지만 미 경기침체 파장이 커질 경우 운신 폭은 더 좁아질 전망이다.
김유미/유병연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