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잡아야 하는데 경기둔화도 고심"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10일 시장의 예상대로 기준금리를 5.0%로 동결한 것은 높은 물가와 시중유동성 상황 등을 감안한 결정으로 보인다.

물가가 수개월째 거침없는 상승세를 지속하고 있는 가운데 시중유동성도 빠르게 팽창해 물가상승을 부추기고 있기 때문이다.

이날 금통위는 평소보다 훨씬 빠른 오전 9시40분께 회의 결과를 발표함으로써 위원들 간에 이견 없이 동결 쪽으로 결론을 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각종 지표상 경기둔화에 대한 신호가 전보다 뚜렷해지고 있는 점은 한은의 고민이다.

여기에 전날 치러진 18대 총선에서 여당이 과반을 확보하면서 `경기부양'을 위한 경제정책을 적극 추진할 경우 금리 인하 목소리도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한은이 조만간 금리를 내릴 것이라는 시장의 관측이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는 분위기다.


◇ 일단 물가안정에 무게 = 지난달 생산자물가는 작년 같은 달에 비해 8%나 껑충 뛰어올라 10년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을 나타냈다.

국제 원자재 가격이 고공행진을 하고 있는 탓이다.

지난 달 소비자물가 역시 작년 같은 달에 비해 3.9%나 상승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올 들어 1월 3.9%로 치솟은 뒤 2월 3.6%으로 한은의 물가관리 목표(3.0±0.5%) 상한선을 줄곧 벗어났다.

생산자물가는 시차를 두고 소비자물가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소비자물가도 당분간 높은 오름세를 지속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동안 물가상승의 `주범'은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이었지만 시중에 풀린 돈도 빠르게 늘어나면서 수요 측면에서도 물가상승 압력이 커지고 있는 양상이다.

한은이 전날 발표한 `2월중 통화 및 유동성 지표 동향'에 따르면 각종 지표들은 은행들이 기업 대출 등을 늘리면서 5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2년 미만의 정기예.적금 등을 포함한 광의통화(M2.평잔기준)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3.4% 증가했다.

이러한 증가율은 2003년 1월(13.9%)에 이어 가장 높은 수준이다.

시중에 자금이 풍부해질 경우 부동산 시장 등으로 흘러들어가 부동산 가격 등 물가 상승을 자극할 가능성이 있다.

현재의 연 5.0%인 기준금리 수준이 8개월째 이어지고 있지만 과잉유동성의 흡수나 물가상승세를 제어하는 데는 여전히 미흡하다는 점을 읽을 수 있다.

그렇다고 연 5.0%의 기준금리가 경기부양적 수준이라고 할 수도 없는 것이 바로 금통위의 고민이다.


◇ 금리인하 가능성 높아져 = 국내 경기를 바라보는 한은의 입장에도 다소간의 변화가 감지된다.

한은이 이날 금통위에 보고한 `최근의 국내외 경제동향'에서도 "우리 경제는 그동안의 경기 상승세가 다소 주춤하다"고 진단했다.

한은은 "수출이 높은 신장세를 이어가고 있으나 소비, 투자 등 내수 부문 회복세는 다소 둔화하고 있다"며 "일부 경기관련 지표들은 경기둔화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한은 집행부가 비록 통계청의 일부 지표를 인용한 것이기는 하지만 `경기둔화 가능성'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처음이어서 주목된다.

경상수지 적자 규모도 당초 예상보다 확대될 것으로 한은은 전망했다.

실제로 향후 경기를 가늠할 수 있는 경기선행지수가 3개월 연속 하강곡선을 그리는 등 각종 경기지표들은 `둔화 신호'를 곳곳에서 내비치고 있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최근 보고서를 통해 "우리 경제가 내수를 중심으로 경기가 완만하게 둔화하는 조짐을 나타내고 있다"며 우리 경제가 `경기둔화 국면'에 진입했음을 인정했다.

여기에 5월부터 열리는 금통위에 친정부 성향으로 분류되는 강명헌.최도성 위원과 최근 금리 인하 필요성을 제기한 김대식 위원 등 3명의 신임 위원이 합류하는 점도 금리 인하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에 따라 경기하강이 더 뚜렷해지고 원자재 가격이 어느 정도 안정된다면 2분기 중에 금통위가 금리를 내릴 것이라는 전망이 고개를 들고 있다.

이미 채권시장에서는 금리 인하의 기대감이 팽배하면서 각종 지표금리들이 일제히 하락해 시장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조재영 기자 fusionjc@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