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실력으로 명인(名人)의 반열에 오른 93명이 '유리알 그린'에서 챔피언을 가릴 제72회 마스터스대회가 10일(한국시간) 오후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 오거스타내셔널골프장(파72.7천445야드)에서 막을 올린다.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4개 메이저대회 가운데 해마다 맨먼저 열리는 마스터스는 올해 '그랜드슬램'이라는 화두를 달고 개최된다.

1년 동안 4개 메이저대회를 모조리 우승하는 것을 말하는 그랜드슬램은 아직 어떤 선수도 밟아보지 못했다.

변호사로 활약하면서 아마추어 선수로 뛰었던 '구성(球聖)' 보비 존스가 1930년 US오픈, 브리티시오픈, 그리고 US아마추어선수권대회와 브리티시아마추어선수권대회를 석권한 것을 그랜드슬램으로 쳐주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마스터스와 PGA챔피언십이 탄생하면서 4개 메이저대회가 마스터스, US오픈, 브리티시오픈, PGA챔피언십으로 자리를 잡은 뒤 그랜드슬램은 난공불락이 됐다.

그러나 타이거 우즈(미국)가 작년 하반기부터 압도적인 경쟁력을 발휘하며 필드를 지배하자 '타이거라면 가능하다'는 여론이 조성됐고 이번 마스터스가 첫 시험대가 됐다.

우즈는 지난 2000년 US오픈, 브리티시오픈, PGA챔피언십을 차례로 제패한 뒤 이듬해 마스터스 그린재킷을 차지해 4개 메이저대회 연속 우승이라는 전대미문의 위업을 이뤘다.

따지고 보면 1년 동안 4개 메이저대회를 모두 우승한 것이니 그랜드슬램이라는 주장도 있었지만 '같은 해 4개 메이저대회를 우승해야 그랜드슬램'이라는 유권해석이 내려지면서 '타이거슬램'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가장 가깝게 다가섰던 우즈에 의해 실현될 지도 모른다는 설렘 속에 막을 올리는 올해 마스터스대회 관전 포인트를 정리했다.

▷우즈, 그랜드슬램 첫 걸음 떼나
우즈는 '그랜드슬램이 가능하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가능하다고 볼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고 답했다.

작년 8월부터 11개 대회에 출전해 한차례 준우승과 한차례 5위를 빼고 우승컵을 9개를 수집했다.

중간에 7개 대회 연속 우승도 있었다.

샷은 물론 정신력과 승부 근성에서 그를 대적할 적수는 사실상 없다는 사실이 입증된 셈이다.

자신의 기량에 대한 자신감을 이처럼 노골적으로 표현한 적이 없었던 우즈가 이렇게 말하자 선수들이나 전문가들도 '그럴 수 있다'고 인정하는 분위기다.

잭 니클러스, 아놀드 파머, 개리 플레이어, 톰 왓슨 등 '살아있는 전설' 4명은 "타이거라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세계랭킹 4위 스티브 스트리커(미국)도 "그랜드슬램을 할 수 있는 선수는 타이거 밖에 없다"고 했고 최경주(38.나이키골프)도 "타이거는 그랜드슬램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마스터스를 정복해야 한다.

그래서 내심 그랜드슬램을 올해 목표로 삼고 있는 우즈는 이번 마스터스에 남다른 각오로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다.

마스터스가 열리는 오거스타내셔널은 우즈에겐 안방과 같은 곳이다.

1997년 첫 메이저대회 왕관을 쓰면서 '골프황제' 탄생을 알린 곳도 오거스타내셔널이었고 13개의 메이저대회 우승컵 가운데 4개를 이곳에서 거둬 들였다.

메이저대회가 열리는 골프장 가운데 네번째로 긴 전장에 빠르고 단단한 그린, 그리고 단 한 군데가 아니면 다음 샷을 제대로 해내기 어렵게 만든 오묘한 코스인 오거스타내셔널은 롱아이언과 쇼트게임, 퍼퍼팅이 강점인 그에게 안성맞춤이다.

세계적인 도박업체 래드브록스는 마스터스 우승자 예측 상품에서 우즈의 우승에 1.1대1의 배당을 내걸었다.

1천원을 걸어 우즈가 우승하면 1천100원을 돌려준다는 뜻이니 사실상 우승 확률이 100%에 가깝다는 것이다.

2위 필 미켈슨(미국)의 배당률은 10대1, 제프 오길비(호주)와 비제이 싱(피지)은 나란히 20대1이다.

▷우즈를 막을 선수는 없나
마스터스는 세계랭킹 50위 이내, 최근 5년 동안 메이저대회 챔피언, 올해 PGA 투어 대회 우승자 등 쟁쟁한 선수들이 나서기에 출전 선수 전원이 우승 후보다.

우즈의 독주를 견제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는 선수들의 면면도 화려하다.

전문가들은 우선 2004년과 2006년에 이 대회를 제패한 미켈슨은 꼽고 있다.

우즈 못지 않게 '오거스타내셔널 친화적 스윙'을 구사한다는 미켈슨은 고질적인 티샷 불안과 '욱'하는 성격만 다스린다면 그랜드슬램을 이루려는 우즈의 야망을 초장에 박살낼 0순위 후보이다.

우즈의 8연승을 저지한 '신예' 오길비도 주목받고 있다.

2006년 US오픈을 비롯해 악센추어매치플레이챔피언십, 그리고 CA챔피언십 등 오길비가 우승을 차지한 3개 대회는 모두 우즈가 작심하고 나선 대회였다.

최근 아들 벤이 심각한 자폐증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공개한 어니 엘스(남아공)가 두차례 준우승의 한풀이에 나선 것도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2000년 우승자 비제이 싱(피지)도 마지막 불꽃을 이곳에서 태우겠다는 다짐이다.

미국 언론은 아담 스콧(호주), 저스틴 로즈(잉글랜드), 파드리그 해링턴(아일랜드) 등도 유력한 우승 후보로 거론하고 있다.

▷복병 최경주, 아시아 최초 메이저 챔피언 되나
'한국산 탱크' 최경주도 무시하지 못할 우승 후보이다.

세계랭킹이 6위로 올라선 최경주는 래드브록스가 예상한 우승 확률 상위 10명 가운데 우즈, 미켈슨, 오길비, 싱, 엘스, 해링턴, 그리고 레티프 구센(남아공)에 이어 스콧과 함께 공동 8위에 올라 있다.

짐 퓨릭(미국), 로즈, 헨릭 스텐손(스웨덴), 루크 도널드(잉글랜드), 세르히오 가르시아(스페인), 스트리커, 아론 배들리(호주), 그리고 작년 우승자 잭 존슨(미국) 등도 모두 최경주보다 우승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통계가 나왔다.

통계상 수치보다 더 높은 것은 최경주가 오거스타내셔널에 대해 갖고 있는 자신감이다.

'메이저대회에서 우승한다면 첫 무대는 마스터스가 될 것'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해온 최경주는 오거스타내셔널골프장을 유난히 좋아 한다.

질긴 러프가 발목을 잡는 일이 없는 것도 마음에 들고 장기인 페이드샷을 잘 받아주는 코스 레이아웃도 입맛에 꼭 맞는다고 한다.

다른 선수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는 유리알 그린도 최경주는 '본대로 가는 정직한 라인'이라면서 좋다고 한다.

특히 최경주는 우즈를 비롯한 '메이저 단골 챔피언'들과 맞대결에서도 밀리지 않는 심리적 자신감이 최고조에 이르렀다는 게 돋보인다.

지난해 우즈를 비롯해 특급 선수들이 모조리 출전한 A급대회에서 두차례나 우승했고 올해는 일찌감치 소니오픈에서 우승컵을 차지하면서 '누구도 두렵지 않다'는 강한 자신감이 마스터스처럼 큰 대회에서는 강력한 무기가 된다.

▷올해도 날씨가 승부를 좌우하나.

.코스 개조는 이제 그만
마스터스를 개최하는 오거스타내셔널은 한동안 장타자를 견제하기 위해 코스를 늘리는데 전념해왔다.

메이저대회가 열리는 코스 가운데 2008년 US오픈 개최지 토리파인스 남코스(7천643야드), PGA챔피언십 단골 개최지 메디나골프장(7천561야드)과 위슬링스트레이츠골프장(7천514야드)와 함께 엄청나게 긴 코스 가운데 하나가 됐다.

더 이상 코스 길이를 늘리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보고 2006년부터 코스 개조는 중단됐다.

올해 대회를 앞두고 1, 7, 9, 11번홀을 손봤지만 관람 편의에 주안점을 둔 공사였다.

300야드를 넘는 장타 앞에 무력해지는 듯 하던 오거스타내셔널은 지난해 강한 바람과 추위가 엄습하자 브리티시오픈이 열리는 링크스코스 못지 않은 횡포를 부렸다.

사상 세번째 오버파 우승자를 냈던 지난해와 같은 날씨는 그러나 올해는 기대하기 어렵다.

장타자가 아닌 존슨이 우승하도록 도와줬던 날씨 대신 올해는 장타자에게 절대 유리한 젖은 코스가 예상된다.

선수들이 연습 라운드를 치른 8일부터 코스는 벌써부터 흠뻑 젖어 있었고 3, 4라운드가 열리는 주말에는 제법 많은 비가 내린다는 예보이다.

'장타자의 놀이터'라는 악명을 지녔던 마스터스에서 존슨과 2003년 우승자 마이크 위어(캐나다)가 '단타자도 우승할 수 있다'는 희망을 줬지만 올해는 어림도 없다는 관측이 지배적인 이유이다.

유리알 그린이 물에 젖어 부드러워지면서 우승 스코어도 두자리수 언더파가 나올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제기됐다.

한편 이번 마스터스에는 량웬총(중국), 지브 밀카 싱(인도), 막생 프라야드(태국) 등 아시아프로골프투어의 간판 선수 3명이 초청을 받았다.

플레이어는 51번째 출전으로 파머가 갖고 있던 최다 출장 기록(50회)을 경신한다.

70번 연속 메이저대회 출전이라는 기록을 쌓은 데이비드 러브3세(미국)는 출전권을 얻지 못해 동정의 대상이 됐다.

(서울연합뉴스) 권 훈 기자 kho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