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 위기의 끝이 보인다는 조심스런 전망이 나오면서 증시 반등 기대감도 솔솔 피어나고 있다.

약세장 속에 나타나는 일시적인 반등장인 '베어마켓 랠리'를 넘어 각국 중앙은행이 시중에 푼 2조달러(약 2000조원) 이상의 유동성이 증시의 조정 추세를 상승으로 되돌려 놓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장밋빛 증시를 꿈꾸기는 아직 이르다는 견해가 지배적이긴 하지만 유동성 랠리에 대한 기대감 자체가 시장이 최악의 상황에선 벗어나고 있다는 긍정적 신호란 분석이다.

◆대공황 이후 최대의 '돈폭탄'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를 비롯한 각국 중앙은행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가 본격화된 지난해 8월 이후 시중에 2조달러 이상의 긴급 유동성을 공급했다.

구체적으론 △6차례에 걸친 기준금리 인하를 통해 1조4000억달러 △지난해 12월 시작한 국채담보대출(TAF)로 2600억달러 △모기지채권담보대출(TSLF)을 통해 2000억달러 △유럽과 일본 중앙은행 1000억달러 등이다.

미국 연방주택기업감독청(OFHEO)도 양대 국책 모기지업체인 패니매와 프레디맥의 모기지 투자 여력을 확충하는 방식으로 사실상 2000억달러 규모의 자금을 방출했다.

FRB가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제 위기에 맞서 대공황 이후 최대 규모의 '돈폭탄'을 시장에 투입했다는 평가다.

이 돈은 금융회사들의 자본확충에 사용되거나,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채 단기 부동자금으로 떠돌고 있다.

조사업체인 이머징 포트폴리오펀드리서치(EPFR)에 따르면 대기 자금의 거처인 전 세계 MMF(머니마켓펀드) 총액은 사상 최대인 3조5000억달러에 달했다.

막대한 규모의 자금이 증시가 안정되는 시기를 기다리며 준비자금으로 대기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헤지펀드도 사상 최대 규모의 실탄(현금)을 쌓아 두고 투자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헤지펀드 업계가 지난 1월 현재 900억달러를 현금으로 확보하고 있다고 전했다.

밀워키의 투자사 로버트 배어드의 브루스 비틀 수석투자전략가는 "월가의 손실 행진이 끝난 것은 아니지만 1분기 실적시즌을 맞아 금융회사들의 손실규모가 윤곽을 드러내고 자본확충 방안도 마련되면서 시장을 짓눌렀던 불확실성은 많이 해소됐다"며 "증시가 랠리에 나설 환경은 조성됐다"고 말했다.

미국 민간연구기관인 ADP가 2일 발표한 3월 민간고용도 8000명 증가라는 '깜짝 실적'을 내며 분위기를 띄웠다.

◆성급한 낙관은 금물

하지만 아직까진 적지 않은 전문가들이 신중론을 견지하고 있다.

부동산과 경기 침체가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벤 버냉키 FRB 의장은 이날 상ㆍ하원 합동경제위원회 증언에서 "올 상반기 경제성장이 (마이너스를 기록하며) 후퇴할 수 있다"며 서브프라임 사태가 시작된 이후 처음으로 경기침체 가능성을 공식 시인했다.

그는 그러나 "금융 시장과 경제가 이미 상당부분 필요한 조정을 받은 상태여서 올 하반기엔 상황이 개선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버냉키 의장은 그동안 거듭 천명해온 '시의적절하게 행동을 취해 나갈 것'이란 발언을 배제한 채 인플레이션이 우려의 근원이 되고 있다고 밝혀 향후 추가 금리인하 여지가 많지 않음을 시사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미국의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0.5%로 종전보다 1%포인트나 하향 조정했다.

올해 세계경제 성장률 전망치도 기존의 4.1%에서 3.7%로 낮췄다.

메릴린치의 리치 번스타인 수석투자전략가는 "서브프라임 사태로만 보면 최악의 상황은 지났지만 세계적 신용경색과 경기 둔화 움직임을 고려한다면 문제는 여전하다"며 "성급한 투자는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유병연 기자 yoob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