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 초등생 ‘혜진·예슬이 사건’의 충격이 채 가시지 않은 가운데 경찰이 일산에서 발생한 여자어린이 납치미수 사건에 제대로 대처하지 않아 국민적 분노를 사고 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일산 대화지구대 경찰은 용의자가 흉기를 소지하고 있었다는 진술과 무차별 폭행 장면이 담긴 폐쇄회로 TV(CCTV) 내용 등으로 납치혐의를 충분히 확인하고도 초동수사에 적극 대처하지 않았다.

사건은 지난 26일 오후 3시44분께 발생했다.

고양시 대화동의 한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A(10) 양이 타는 순간 40~50대로 추정되는 남성이 뒤따라와 흉기로 위협하며 무차별적으로 폭행했다.

이 남성은 반항하는 A양의 머리채를 잡고 3층에 끌고 내리려 했다.

A양의 “살려달라”는 비명을 들은 이웃 여대생 B씨가 계단으로 뛰어올라가자 용의자는 유유히 사라졌다.

경찰에 신고가 접수된 것은 이날 오후 3시59분.이 아파트 관리실 직원은 일산경찰서 대화지구대에 이 같은 사실을 신고한 뒤 “용의자의 얼굴이 찍힌 폐쇄회로TV(CCTV)가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후 과학수사팀에 연락해 CCTV에서 용의자가 맨 손으로 누른 엘리베이터 버튼에서 지문 1점을 채취했다.

그리고 경찰 수사는 더 이상 진행되지 않았다.

지구대 현장 조사팀은 이날 오후 7시가 다 돼 사건을 정리한 뒤 야근 팀에게 인계하고 퇴근했다.

일산경찰서에 정식으로 사건이 접수된 것은 다음 날인 27일 오전 11시께.우연히도 이 사건은 다음 날인 28일 사건 당일 당직했던 폭력1팀에 배당됐다.

폭력1팀은 “용의자 행색이 초라한 데다 술에 취한 것 같아 단순 폭행사건으로 보고 있다”는 지구대 보고서를 아무런 의심없이 받아 들였고 토요일인 29일 사건은 다시 폭력1팀 C 형사에게 배당됐다.

안양 어린이 실종사건으로 전국이 떠들썩하고 경찰 내부도 잔뜩 긴장하고 있는 터에 어린이 대상 사건인 데도 일반 사건처럼 처리되고 만 것이다.

C형사는 당일 현장 조사에 나서 피해자 어머니를 만났지만 “아이가 충격이 크니 다음에 하자”는 말만 듣고 확인한 CCTV를 확보한 뒤 경찰서로 돌아왔다.

이 과정에서 A 양을 구해 사건 해결의 가장 중요한 참고인이 될 B씨에 대한 조사는 이뤄지지 않았고,소홀한 초동수사도 여기서 그만이었다.

그렇게 하루가 또 지난 30일 오후 경찰에 비상이 걸렸다.

주민 제보로 언론이 취재에 나섰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후에도 경찰 대처는 역시 기민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언론에 보도된 시각부터 수사팀이 탐문에 나서고,이후에 수사본부가 차려지는 등 부산하게 움직였지만 다음 날인 31일 오전 1시나 돼서야 각 수사팀으로부터 보고를 받고 사건 전모를 확인했다.

동시에 사건 수사가 적정하게 진행됐는지 감찰이 진행됐다.

경찰은 1시간 뒤 방범순찰대 등 대규모 경찰력을 동원해 광범위한 지역을 대상으로 본격적인 탐문 수사에 나서고, 구체적인 수사 시스템을 가동하기 시작했다.

사건이 발생한 지 이미 만으로 닷새가 다 돼 가는 시점이었다.

일산경찰서 홈페이지는 시민들의 비난이 쇄도해 접속마저 제대로 안되고 있는 상황이다.

국민적 관심이 쏟아지자 이명박 대통령은 31일 오후 일산 초등생 납치미수 사건과 관련, 일산경찰서를 전격 방문해 질책했다.

디지털뉴스팀 newsinf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