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서 '로레나 무섬증'이 번질 조짐이다.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에서 많은 선수들이 최종일이면 펄펄 나는 타이거 우즈(미국) 앞에서 자멸하며 우승컵을 헌납하는 현상이 로레나 오초아(멕시코)를 상대하는 LPGA 투어 선수들에게도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오초아는 31일(한국시간) 애리조나주 슈퍼스티션마운틴의 슈퍼스티션마운틴골프장(파72.6천662야드)에서 열린 LPGA 투어 세이프웨이 인터내셔널 최종 라운드에서 6언더파 66타를 쳐 4라운드 합계 22언더파 266타로 우승했다.

작년에 이어 2년 연속 정상에 오른 오초아는 올해 세 차례 대회에서 우승컵 두 개를 모아 상금랭킹 3위에서 1위(55만5천550달러)로 뛰어 올랐다.

1타차 불안한 선두로 경기에 나섰지만 18번홀을 마치자 2위 그룹과 타수차가 무려 7타까지 벌어진 완벽한 우승이었다.

경기장을 가득 메우고 멕시코 국기를 흔들며 마치 축구장을 방불케 하는 열광적인 응원을 보낸 멕시코 동포 앞에서 우승을 차지한 오초아는 "이런 성원을 받는다는 것은 정말 기분 좋은 일"이라면서 "나 자신만 위한 게 아니라 여기 오신 모든 분들을 위해 열심히 했다"고 동포애를 과시했다.

22언더파 266타는 안니카 소렌스탐(스웨덴)이 2001년에 문밸리골프장에서 세웠던 대회 최소타 기록(261타)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2004년부터 슈퍼스티션마운틴골프장으로 장소를 옮긴 이후 72홀 최소타 신기록이다.

종전 기록은 2004년 소렌스탐, 그리고 작년에 오초아가 세운 18언더파 270타.
오초아도 눈부신 플레이를 펼쳤지만 역전 우승에 도전했던 추격자들이 일찌감치 무너진 것도 그의 우승을 도왔다.

8개월째 이어진 한국 선수의 우승 갈증을 풀어줄 것으로 기대했던 이지영(23.하이마트)도 '로레나 무섬증'을 피하지 못했다.

챔피언조에서 오초아와 함께 경기를 펼친 이지영은 중반부터 뒷걸음을 걸어 경쟁에서 탈락, 이븐파 72타로 경기를 마쳐 준우승(15언더파 273타)에 만족해야 했다.

앞선 3개 대회에서 하위권에 그친 이지영은 시즌 첫 상위권 입상으로 자신감을 회복한 것이 나름대로 수확이었다.

2번홀(파5)에서 오초아의 버디에 버디로 응수했고 3번홀(파4)에서 1타를 잃을 때 오초아도 파퍼트를 놓치는 행운까지 따랐던 이지영은 4번홀(파3)에서도 오초아와 나란히 버디를 잡아내 팽팽하게 맞섰다.

그러나 5번홀(파4)에서 보기를 적어낸 이지영은 8번(파3), 9번홀(파4)에서 연속 버디를 때린 오초아에게 밀려나기 시작했다.

초조해진 이지영은 11번(파4), 12번홀(파3)에서 잇따라 1타씩을 까먹어 준우승 경쟁에서도 한때 밀려나는 위기를 맞았다.

13∼15번홀에서 3연속 버디를 몰아친 오초아가 6타차 선두로 내달리며 사실상 우승을 굳히자 그제서야 마음이 편해진 이지영은 14번홀(파4)과 18번홀(파5)에서 버디를 잡아내 준우승 다툼에서 승자가 됐다.

이지영은 "오초아는 결코 흔들림이 없었다"면서 "내가 배워야 할 점이 바로 그것"이라고 완패를 시인했다.

LPGA 투어에서 손꼽히는 장타자끼리 맞대결이라 더 관심을 끌었던 최종 라운드가 끝나자 "누가 더 멀리 쳤느냐"는 질문도 나왔다.

전날에는 "이지영이 나보다 더 장타를 친다"고 했던 오초아는 "오늘은 내가 더 멀리 쳤다"면서 웃었다.

이지영과 함께 1타차 공동2위로 최종 라운드에 나섰던 안젤라 스탠퍼드(미국)도 12번홀(파3) 보기에 이어 13번홀(파5)에서 트리플보기로 자멸, '로레나 무섬증'의 희생자 명단에 올랐다.

1라운드에서 10언더파 62타를 뿜어내 코스레코드를 갈아치웠던 스탠퍼드는 이날 2오버파 74타를 친 끝에 공동4위(13언더파 275타)까지 밀려났다.

오히려 공동 27위에 머물러 있어 오초아를 따라 잡을 엄두를 내지 못했던 지은희(22.휠라코리아)가 부담없이 경기를 치른 덕에 7언더파 65타의 맹타를 터트려 스탠퍼드와 함께 공동 4위까지 뛰어 올랐다.

오초아에 8타나 뒤져 있던 미네아 블롬퀴스트(스웨덴) 역시 5타를 줄여 3위(14언더파 274타)를 차지했다.

박희영(21.이수건설)은 2언더파 70타를 쳐 공동 9위(11언더파 277타)로 올라서 데뷔 이후 처음 '톱10'에 들었다.

이 대회에서 네 차례 우승한 로라 데이비스(잉글랜드)와 세 차례 정상에 올랐던 소렌스탐은 나란히 9위(11언더파 277타)를 차지해 눈길을 끌었다.

(서울연합뉴스) 권 훈 기자 kho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