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ㆍ와인ㆍ사진ㆍ문학 … 감성마케팅
갤러리 등 리더십 강좌 크게 붐벼

"사장님은 오늘 저녁 공부하러 가셨습니다."

기업 경영자들이 그림,와인 등을 공부하느라 분주하다.

단순히 취미가 아니다.

저녁 스케줄을 제쳐놓고 강의 들으러 가고 밤잠 줄여 가며 숙제도 한다.

그림은 감성 마케팅의 재료로 필수가 됐고 와인을 모르면 비즈니스 세계에서 뒤처지는 느낌이 들기 때문.

젊어선 고도 성장기인지라 문화 생활을 꿈도 못 꿨고 한때 대학 최고경영자(CEO) 과정 수료하고 골프 잘 치면 대접받던 기업인들에게 '문화 코드'가 생존 수단이 된 것이다.

각종 문화 강좌들이 기업 CEO와 임원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자 갤러리와 와인회사들은 리더십 코스를 줄줄이 개설하고 있다.

◆월례 조찬 특강 인기

삼성경제연구소의 월례 조찬 특강 '메디치21'에는 매달 600명 이상이 몰려 그림과 역사,문화를 배우고 간다.

3년 전 첫 시작 땐 100여명 안팎이던 것이 6배 늘었다.

연구소 관계자는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사장ㆍ임원들이 오시는데 수강자를 더 받기 힘들 정도"라고 말했다.

이 연구소는 와인ㆍ그림ㆍ영화ㆍ사진을 배우는 'CEO&컬처' 강좌를 시리즈로 만들었다.

한경 HiCEO도 올 하반기에 인문학을 본격적으로 배우는 최고경영자 과정을 개설할 예정이다.

가나아트갤러리가 봄ㆍ가을 두 번 여는 'CEO 문화포럼'에는 민형동 현대백화점 대표,윤영달 크라운ㆍ해태제과 회장,박상환 하나투어 대표,서영태 현대오일뱅크 대표,홍경아 라인원건설 대표 등 기업인 100여명이 다녀갔다.

동국대 사회교육원이 지난해 8월 시작한 '아트 마케팅 및 재테크 특별강좌'는 처음에 정원을 50명으로 잡았다가 100명으로 늘렸다.

CEO들의 그림 공부는 제품ㆍ서비스에 그대로 투영된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전자제품 광고에 그림과 서커스를 모티브로 삼은 것이나 이승한 삼성테스코 대표가 홈플러스 매장에 미술품 전시 공간을 만든 것들이 그런 사례다.


◆골프 대신 와인으로 네트워킹

인맥을 넓히기 위한 수요도 있다.

저명 인사들이 먼저 시작하면 나중에는 인맥 쌓기와 영업을 위한 수요가 가세한다.

와인 강좌가 대표적인 케이스.삼성경제연구소의 '와인&컬처' 수강생인 한 병원장은 "앞 기수에 오세훈 서울시장이 있다"며 동창생 명단을 훤히 뀄다.

'리더십 코스'를 운영하는 보르도와인아카데미의 관계자는 "수강생의 80~90%는 기업 임원인데 직장 상사나 바이어와 식사할 때 와인을 마시는 경우가 많아져 사교와 영업 목적으로 와인을 배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곳은 벌써 14기,200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이런 강좌를 놀러 다니는 것쯤으로 여겼다간 견뎌내지 못한다.

투자할 시간,집중력과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보르도와인아카데미를 수료하려면 5주 동안 매주 1회 오후 6시30분부터 세 시간을 꼬박 앉아 있어야 한다.

삼성경제연구소 'CEO&컬처' 시리즈는 수강료가 300여만원이나 된다.

그래도 기업인들은 대단한 열정을 갖고 참여한다.

지난해 1기 수료식을 마친 서울대의 인문학 최고위 과정 '아드 폰테스 프로그램'은 출석률이 80%에 달했다.

이철우 롯데쇼핑 사장,김인철 LG생명과학 사장,최영한 국민은행 부행장,이계안 의원 등 38명이 수료했다.

정지영/김경갑/고두현 기자 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