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계를 긴장 속으로 몰아넣었던 '춘투'전선에 올해는 화합의 미풍이 불어올까.

인플레 파고 속에서도 임금동결에 합의한 LG전자,동국제강 등 전통적인 '노사관계 모범 기업' 외에 최근 강성노조의 대명사로 꼽혀온 기아자동차 노조에도 변화를 예고하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일부 생산라인의 노동자 전환배치에 동의하는 방식으로 회사 측의 신규 채용 부담을 덜어준 것.

임금 동결을 선언하는 노사가 줄을 잇고 있고,이달 들어서는 그룹 계열사 전체 노동자들이 임금협상을 사측에 일괄 위임하는 사례까지 나왔다.

미국 경기 침체 우려에다 원자재값 급등세 등 대외 악재가 겹치면서 노사 양측에 '뭉쳐야 산다'는 공감대가 확산되는 모습이다.

◆노사 전선에 봄바람 부나

이달 들어 하루 걸러 한 번씩 '노사대화합 선언'이 나올 정도로 노사 간 협상 분위기가 호전되고 있다.

LG전자는 국내 대기업 가운데 처음으로 지난 7일 올해 임금을 동결하는 내용의 임금단체협상 결과를 발표했다.

작년 1조2000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지만 악재 투성이의 대내외 환경을 고려해 작년에 이어 한 해 더 허리띠를 졸라매기로 한 것이다.

10일에는 동국제강그룹 산하 5개 계열사가 일괄적으로 임금 및 단체협상을 회사 측에 일괄 위임했다.

그룹 계열사가 한목에 협상을 사측에 맡긴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이 밖에 대한항공,STX엔파코,LIG넥스원,E1 등이 노사화합 대열에 줄줄이 합류했다.

강경노조의 대명사인 자동차업계에도 조금씩 변화의 바람이 감지되고 있다.

기아자동차 노조 관계자 20명은 올초 '모하비' 신차발표회에 참석,고객 서비스 제고를 다짐했다.

창사 이래 처음이다.

이달 초엔 생산라인의 인력 전환배치에도 합의했다.

쌍용차 노사도 전환배치 문제를 긍정적으로 검토 중이다.

시장상황에 따라 가동인력을 탄력적으로 운용할 수 있도록 노조가 물꼬를 터 준 것이다.

◆답은 이미 나와 있다

올 들어 노사 간 화합 무드가 조성되고 있는 것은 경영환경이 그만큼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고유가에 환율 급등,원자재 가격 상승 등 일일이 악재를 언급하기 어려울 정도다.

최근엔 미국 자동차업체인 크라이슬러가 자동차 수요 감소를 이유로 올 여름 2주간 공장 문을 닫겠다고 선언할 정도로 세계 경기도 침체 국면에 빠졌다.

동국제강 관계자는 "이런 상황에서 노사평화마저 깨질 경우 회사가 돌이킬 수 없는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인식이 노사 모두에 확산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과거 경험을 통해 노사 간 신뢰가 기업의 가장 큰 경쟁력이라는 '해답'도 이미 나와 있는 상태다.

수년째 노사화합의 모범으로 대접받는 기업들 대부분은 한 번씩 비싼 수업료를 치른 경험이 있다.

LG전자는 1989년 3개월간 회사 문을 닫을 정도로 극심한 노사분규에 시달렸고,현재 '세계 조선업계 1위'를 순항 중인 현대중공업도 한때는 파업의 메카였다.

회사가 일단 살고 봐야 노동자도 살 수 있다는 교훈을 몸으로 느낀 뒤 벌떡 일어선 기업들이다.

세계 최고 기업으로 명성을 날리던 미국 대표 자동차 기업 GM이 노조에 발목을 잡히면서 작년 387억달러라는 사상 최대의 손실을 기록한 사실도 반면교사로 작용하고 있다.

◆아직 갈 길은 멀다

잇따른 노사화합 선언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올해 노사 관계를 속단하긴 이르다는 견해가 우세하다.

비정규직 보호법 확대 시행으로 노동계가 술렁이는 가운데 '산별교섭'이라는 악재도 도사리고 있다.

상당한 '노사 힘겨루기'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공공기업의 구조조정도 잠재적 불안요인이다.

일부에서는 과거의 구태도 거듭되고 있다.

만도,알리안츠생명보험,동양실리콘 등이 최근 들어 파업을 벌였거나 아직 진행 중이다.

현대자동차에서는 '노노갈등'마저 불거지는 모습이다.

한 경제연구소 관계자는 "노사협력을 통한 기업성장이 고용확대와 소득증가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정착돼야만 국가경제의 미래가 있다"고 지적했다.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