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못지않은 ‘상술’하면 역시 유태인이다. 우리는 상술을 테크닉, 처세 정도로 받아들이지만 유태인 상술의 진면목은 다른 데 있다. 돈을 빼놓은 인생을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유태인들은 어릴 적부터 종교를 통해 돈을 배운다. 돈에 영혼을 담고 영혼과 거래하는 유태인들.

수십 년 전 일이다. 한 거부의 유태인이 임종을 맞게 되었다. 구두쇠였던 그는 그 많은 재산을 놔두고 죽으려하니 도저히 눈이 감기지 않았다. 죽기 직전에 아들을 불렀다.

“내 유언이니 현금으로 500만 불을 찾아와라.”

“500만 불이요?”

역시 돈에 밝은 아버지가 상속세를 피하기 위해 자식들에게 현금을 나줘주려나보다 속으로 생각하고 거액을 찾았다(지금 돈으로 환산한다면 수천만 불이 넘는다). 그 돈으로 무엇을 했을까.

“돈을 관속에 깔아라.”

돈으로 둘러 싸여 죽겠다는 것. 돈에 파묻혀 저승에 가져가겠다니 아들은 기가 막혔다. 하지만 지엄한 유언이 아니던가.

마침내 임종하여 관에 돈과 시신을 넣고 땅에 묻어야 했다. 하지만 500만 불이나 땅속에서 썩는 꼴을 어떻게 눈뜨고 보고만 있을 수 있겠는가. 고심하던 아들은 한 가지 방도를 찾았다. 현금을 모두 빼고 그 금액을 자기 통장에 예금해 500만 불짜리 수표로 발행하고 현금 대신 넣은 것.

아들은 아버지 시신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 가시는 데 무거우실 것 같아 수표로 바꿨습니다. 언제든 현금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진짜로 발행된 수표이기에 거짓은 아니었지만 죽은 시신이 어떻게 환금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저승에 돈을 가져가겠다는 아버지나 현금을 이승으로 찾으러 오라는 자식이나 피장파장이 아니겠는가.현금은 아들 차지가 된 것이다. 아들은 유언도 지키고 돈도 얻을 수 있었다.

우스갯소리 같지만 실화다. 이런 재치가 나올 수 있었던 이유는 유태인들의 평소 종교 교육이 밑바탕이 되어있기 때문. 유태교 지도자 랍비는 신도들에게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하는 거짓말은 하느님도 이해하실 것”이라며 교육한다고 한다.

나는 90년 대 초 미국에서 유태인 영가를 구명시식하면서 유태인들의 돈에 대한 무서운 집념을 몸소 체험했다. 그들의 상술을 실감했다. 유태인들은 거리낌 없이 돈에 영혼을 담았다.

롱아일랜드에 살고 있는 유태인 할머니가 뉴저지 법당을 찾았다. 특이하게 한국인 며느리와 함께 왔다. 자식을 많이 둔 할머니는 모두를 훌륭하게 교육시켰다. 아들은 의사, 변호사, 회계사로, 딸은 고등학교 교장 선생님으로 만들어 유태인 사회에서도 인정받는 명문 집안이었다. 며느리의 남편(아들)도 잘나가는 사업가로서 이토록 유복한 집에서 왜 구명시식을 청할까?

표면적 이유인 즉, 돌아가신 할머니 남편(할아버지)의 영가가 아직도 집안에 돌아다니니 조치를 취해 달라는 것. 중세의 고성같은 으리으리한 저택에서 며느리가 낯선 할아버지 영가와 마주치는 일이 생겼던 것이다. 며느리가 놀라서 이 사실을 알리자 할머니는 구명시식을 결정했다. 놀랍게도 할머니는 집안에 떠돌고 있는 할아버지 영가의 존재를 알고 있을 뿐 더러 영가와도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미스터 차, 여기에 사인하시오.”

구명시식 날 유태인 할머니가 종이 한 장을 불쑥 내밀었다. 그 종이엔 ‘구명시식 사실을 절대 발설하지 않는다’를 시작으로 대여섯 개의 조항이 나열되어있었다. 나는 이런 계약서를 쓰고 구명시식을 해 본 적이 없기에 적잖이 당황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이번엔 1만 5천불을 내 앞에 꺼내놓는 게 아닌가. 형편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백 달러 내외를 받던 구명시식 비용의 수백 배가 넘는 거금이었다. 선뜻 거금을 지불한다고 하자 나보다 더 놀란 것은 한국인 며느리. 평소에는 1달러에도 벌벌 떨던 시어머니가 아니던가.

구명시식도 흥정을 하다니. 유태인답게 내가 거절하기 힘든 거래조건을 내민 것이다. 순간 미국의 한인교포들이 유태인들에게 당한 일이 떠올랐다.

짧은 이민 역사에도 불구하고 손재주 좋고 근면한 한국인들은 미국 사회에 빠르게 자리를 잡았다. 감히 다른 민족들이 흉내 낼 수 없는 강한 정신력의 개척자였다. 그런 한인들이 유태인들에게는 번번이 당했다.
유태인들은 처음에는 매우 친절하게 형제처럼 대하다가도 어느 순간 돌변하여 한국인 거래 상대방을 빈털터리로 만들었다. 다름 아닌 계약서 때문이었다. 계약의 전문가인 유태인들에게 서류 계약에 꼼꼼하지 못한 한국인들은 말 그대로 ‘봉’이었던 것이다.

나는 할머니가 내민 허름한 종이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알아차렸다. 거금에도 불구하고 내가 사인을 거절하자 이번에는 유태인 할머니가 당황했다. 밀고 당기는 신경전 끝에 ‘절대’를 ‘가급적’으로 바꿀 수 있었다. 가급적 발설하지 않는다. 이정도면 거래에서 일단 내가 판정승을 거둔 셈이다.

그러나 그 이유는 나중에야 알 수 있었다. 영혼과 관련된 비용은 절대로 한 푼도 깎지 않고 요구대로 모두 지불한다는 유태인들의 전통이 있던 것이다. 처음부터 하면 하고, 말면 마는 것이지 깎으면서까지 하지 않는다는 사실.

그처럼 거금까지 들여가며 유태인 할머니가 구명시식에서 하고자 했던 바는 무엇일까.

사연은 이랬다. 과거 할머니의 남편은 갑자기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불행 중 다행으로 생전에 남편이 거액의 보험을 들었기 때문에 이 보험금으로 자식들은 모두 일류 대학까지 공부시킬 수 있었다. 보험을 즐겨 들고 확실하게 이를 이용하는 유태인들의 특성상 이러한 막대한 보험금을 타서 자식들 교육시킨 일은 얼마든지 가능한 사례였다.

유태인들은 느낌이나 영혼의 세계를 실제 세계 이상으로 경의하는 기본자세가 있어, 일상생활의 많은 부분을 영혼의 세계와 연관 지어 생각하고 있다. 유태인들의 이러한 특성은 조금이나마 알고 있던 나였지만 할머니가 말하는 할아버지 영가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는 나에게 미심쩍은 부분이 있었다.

유태인 할머니가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 분의 남편은 사고를 당해서 목숨을 잃은 것이 아니란 걸 알게 되었다.

“당신의 남편은 사고사가 아니라 자살입니다.”

바로 ‘자살’이었다. 교묘한 테크니컬한 사고사.

할머니는 의외로 담담하게 사실을 확인해주었다. 남편은 자살하기 직전에 어느 누구에게도, 심지어는 부인에게도 자신의 자살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자신을 제외한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자신의 죽음을 신체이상에 의한 사고사로 알기를 원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할머니는 입을 다물고 있었을 뿐 이미 짐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할머니는 심각한 얼굴로 ‘며느리와 자식들이 알면 안 된다.’며 주의를 주었다.

그렇다면 왜 사고사를 가장해 교묘하게 자살을 해야만 했을까? 다름이 아니라 자식들 교육 때문. 아이들이 점점 자라고 가장으로서 사업이 실패하여 막대한 교육비는 물론 생활비를 해결할 능력이 없다고 판단한 아버지는 몇 백만 달러짜리 고액의 보험에 가입한 후, 자식들의 교육과 가정의 미래를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린 것이었다. 경찰이나 보험 회사 측에서 자살이라고 판정할 수 있는 근거가 아무것도 없어 심장마비로 결론지어졌다.

내가 놀란 사실은 이뿐이 아니다. 남편의 영혼을 천도하기위해 초혼을 하고 또 놀라야 했다. 구명시식을 통해 나타난 그 할머니의 남편의 영혼 뒤에는 셀 수 없을 정도의 여러 영가가 함께 나타난 것이다. 바로 그들은 똑같이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 또는 가정을 지키기 위해 자살을 한 유태인들의 영가들이었던 것이다. 유태인들의 강한 정신력과 지독한 교육열의 단면을 보면서 나는 왜 유태인들이 미국에서 성공한 민족이 됐는가를 알게 되었다.

그러나 어떤 이유로든 자살은 최선이 아니란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영혼의 세계에서 자살한 사람의 영혼은 가장 대접받지 못하는 부류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영혼의 세계에 돈은 한 푼도 필요치 않다. 자식은 모두 성공시켰지만 유태인 영가는 죽어서도 여전히 구천을 떠돌며 방황하고 있었다. 더 시간이 흐른다면 당연히 후손들에게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 뻔했다.

“나를 천도해 주시오. 이 집에서 벗어날 수가 없소.”

자유로워지고 싶은 유태인 할아버지 영가는 절규했다. 그래서 후손들의 눈에 종종 유령으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조상인 자신이 불행한데 후손인들 제대로 행복할 수 있을 것인가. 과보를 피할 수 없는 영혼의 세계를 잘 알고 있는 유태인 할머니가 우려했던 점도 바로 이 대목이었다. 구두쇠 할머니가 거액을 지불한 이유를 충분히 알고도 남았다.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것은 무엇일까. 바위? 쇳덩어리? 아니다. 나는 ‘가장(家長)의 어깨’라고 말하고 싶다.
처자식을 먹여 살려야 하는 남성 가장의 책임감이 어찌 여성의 모성본능 만큼이나 숭고하지 않으랴. 우리도 예외 없이 가장이거나 가장의 보살핌을 받는 처지가 아닌가. 이날 등장한 유태인 영가를 보면서 같은 숙명의 동반자로서 남의 일 같지 않았다. 마지막 순간에 자신의 목숨을 바쳐 비극을 선택해야만 했던 가장의 무게가 구명시식 내내 내 어깨를 짓눌렀다.

지금 생각하면 그 때 할머니가 내민 허름한 종이에 무심코 사인을 했더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아마 이 칼럼을 문제 삼아 1만5천 불 뿐 아니라 거액의 소송 배상으로 나는 알거지가 되었을지 모른다.

내가 그 동안 미국에서 겪은 유태인들의 특징은 그들 대부분은 별나다 싶을 만큼 미신이나 영혼의 세계를 믿고 있었다는 점. 이는 일본 사람들과도 일맥상통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아마도 수천 년 전 동안 나라 없이 장사를 해 온 민족으로서 나만이 잘나서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날씨도 맞아야 하고 조상 영혼들의 보살핌과 하늘의 운세도 맞아야 성공한다는 것을 보다 일찍부터 깨달은 때문이 아닌가 한다.

다시 말하지만 큰 부자는 하늘이 내린다. 노력만큼 돈 번다면 누군들 재벌이 아닌 사람이 있을까. 귀신은 공짜밥을 먹지 않는다.

※구명시식(救命施食)

구명시식이란 불교의 구병시식(救病施食)에서 유래했다. 본래는 심신의 질병에 시달리는 자의 치유를 위해 도력 높은 고승들이 행하던 구병시식이었다. 다른 말로 ‘병(病)’자 대신에 떡 ‘병(餠)’자를 써서 떡을 나누어먹는 다는 뜻도 있다. 그런데 영능력자 차길진 법사는 망자의 영혼을 초혼하여 대화하고 천도시키는 그만의 독특한 의식으로 승화하여 목숨 ‘명(命)’자를 써서 특별히 구명시식(救命施食)이라 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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